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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작가 Jul 22. 2020

이혼은 전염된다.

이혼은 또 다른 이혼을 부른다.



'이혼'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비롯해서 '전염'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다는 것에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험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사건이므로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다. 또한,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이혼'이라는 것을 여전히 좋지 않은 시선도 있어 '전염'이라는 것과 연관 지어 이야기한다면 이러한 선입견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혼은 전염된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퍼지는 것에 대해 약간이나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혼은 전염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사회생활 속에서 이혼의 전염성은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자신의 직장, 조직 내 주위를 살펴보라.


이혼을 한 사람이 있는가?

법적으로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이혼의 상태에 이른 경우가 있는가?


그렇다면, 조심해야 한다.

이혼을 한 사람과 이혼을 하지 않은 사람 모두 말이다.

.

.

.





전염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병이 남에게 옮는다는 의미와 다른 사람의 습관, 분위기, 기분 따위에 영향을 받아 물이 드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후자의 전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혼이 어떻게 전염될까?




과거, 내가 경험한 사례를 살펴보자.


직장동료 A: "부장님, 오늘 술 한잔 어떠십니까? 정말 맛있는 집을 찾았습니다."

부장: "그래?, 오늘 팀원들 데리고 회식하는 건 어때? 한번 다들 약속이 있나 물어봐."

직장동료 A: "부장님이 가자고 하면 가야죠. 무슨 약속입니까?! 바로 추진하겠습니다."

부장: "그래"


그 직장동료 A는 항상 팀 내 회식을 주도하고, 직장 상사들과의 술자리를 좋아했다. 팀 내에서는 그 동료가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직장동료 B: "형, 저 사람 왜 저러는 거예요? 집에도 안 가고 매일 저렇게 술 마시고 놀고... 승진을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미치겠네요."

용작가: "그러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장님은 저 사람이 엄청 마음에 들겠지. 승진도 빠르게 되지 않을까?"

직장동료 C: "승진하고 싶으면 업무능력으로 하지... 여러 사람 괴롭히면서 저게 뭐하는 짓인지... 너무 화가 나네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직장동료 B는 빠르게 승진을 했고 팀장이 되었다.




아마도 주변에 워커홀릭, 조직생활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가 왜  회사, 조직생활에 그렇게 충성을 다하는지 한번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무언가의 '결핍'은 아닌가?




하여튼 이 이야기를 끝까지 살펴보도록 하자.


직장동료 A에 대한 의문과 소문이 조금씩 나의 귀에 들어왔다.


직장동료 B: "그 사람은 자기 아내하고 딸이 있는데, 왜 집에 가지 않는 거야.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직장동료 C: "아무래도 별거하거나 이혼한 거 아니야? 이상하잖아..."

직장동료 D: "이혼한 지 몇 년은 됐다고 하는데? 몰랐어?"

직장동료 B, C: "아..."


그들은 모두 이해를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직장동료 A의 팀원 한 명이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직장동료 A 팀원: "용작가님, 저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용작가: "무슨 일 있는 거야? 왜 그만두려고 해?"

직장동료 A 팀원: "용작가님, 저는 회사,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가정을 희생하고 있죠. 그 인생의 결과를 뻔합니다."


그 직장동료 A 팀원은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떠났다.


또 다른 팀원은 여자 친구와 이별을 했고... 또 다른 팀원은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선택했다.

그들의 각자 사정이 있었겠지만, 우연히도 그들은 직장동료 A의 팀원이다.




'이혼'을 하게 되면, 가정에서의 행복, 가치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비중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이혼'은 필연적으로 가족, 가정의 행복이라는 가치의 결핍을 초래한다.

기회조차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혼'의 당사자는 가정에 집중할 이유, 집에 들어갈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집은 오히려 쓸쓸함이 느껴지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당사자는 어떻게 할까?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당사자는 다른 어떤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가령,

사회생활에서는 '조직 내 인정', '승진' 등이지 않을까?




'결핍'의 당사자들이 어떤 인사 결정자의 위치가 아니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핍'의 당사자들은 결국에는 빠르게 승진할 것이고 인사 결정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바로 '이혼은 전염된다.'




내가 말하는 것이 꼭 '이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 해두길 바란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별로 다가올 것이고,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별거'나 '다툼이 잦은 수준' 등일 것이다.


이러한 '결핍'은 결국에 다른 사람, 팀원들에게 전염된다.


야근의 연속.

술자리의 연속.

주말 약속.


이렇게 말이다.




'결핍' 당사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을 강요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나 팀원의 선택은 두 가지다.

회사나 팀을 떠나거나 아니면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게 되면, 결국에 '이혼은 전염된다.'




나는 이러한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이혼' 당사자들의 '결핍'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또 다른 가정을 꾸리는 것이든 취미생활이든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이혼' 혹은 '별거' 등 가정의 '결핍'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말이다.


그것을 직장생활, 사회생활 내에서 충족시키려고 한다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큰 병을 전염시키는 것과 같다.


그 당사자 입장에서 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이혼은 전염된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들을 보라.

그들은 이미 대부분 전염되지 않았는가?


앞으로의 미래 세대,

젊은 세대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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