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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작가 Jun 23. 2021

아픈 것이 왜 두려운가?

아픈 것이 두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죽음 때문인가? 아니면 그 고통 때문인가?


아니다.


사실 아픈 것이 두려운 이유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아픈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러야 이별 아닌가? 하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실제로 아프게 되면 결국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지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것을,

사실상 이별, 실질적 이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제 그 이유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

.

.

보통 아프게 되면 대부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요양병원에 가게 된다.


사지가 멀쩡한데 요양병원에 가는 것과는 달리,

이런 상황... 사지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어서 요양병원에 가게 되면.... 대부분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침대에서 지내게 된다.


나는 친한 형한테 이걸 생지옥이라고 표현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내가 몸을 제대로 못 가누면 요양병원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평소에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 두려움은 사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순진한 사람들은 집에서 아픈 가족을 모시면 되지 않겠냐고 혹은 곁에 두면 되지 않겠냐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픈 사람을 집에서 돌보고 곁에 두지 않고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당신의 생각이 약간 틀릴 수도 혹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가?




암환자인 나의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래 그냥 이렇게 집에서 지내면서 병을 치료하자고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이 발생을 하고 상황이 달라졌다.


어머니가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생기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족들 중 누군가 이제 어떻게 하냐고 말을 했고,

요양병원에 들어가서 치료를 하자고 말도 나왔다.




어머니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여기서 지금 못 일어나면 요양병원에 보내질 수도 있겠구나..."

                



어머니는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이런 말씀을 했다.


너무나 다급한 목소리였다.


"조금만 있어봐라. 일어날 수 있다. 조금만 기다려봐라..."




어머니의 두려움이 너무 느껴지는 말이었다.


나는 사실 어머니 이 말에 엄청 슬펐고,

그리고 화가 났다...


정말 이게 머라고...


모든 것을 걸더라도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말했다.


"엄마, 걱정마라."


"그런 일은 없다. "


"요양병원에 보내는 일은 없다!"




우리는 사실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아프면 머 그냥 죽고 끝이지.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고 그 기간 동안 엄청난 고통이 기다릴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도 아파도... 항상 가족이 옆에 있겠지 라는 생각도


주변을 돌아보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너도 나도 이제 요양병원에 가족들을 보내고 있다.


"요양병원에 들어가려면 한참을 대기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예외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어떻게 확신하는가?


아픈 것에 두려움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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