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운동이 좋아서 시작했을 뿐이었다

by 글쓰는 트레이너

나는 밖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던 까무잡잡한 소녀였다.
언니가 기억하는 나는 줄넘기를 허리춤에 묶은 채,
땀에 젖은 얼굴로 해맑게 웃던 아이였다고 한다.
운동은 내게 놀이였고, 자유였다.


그러다 교복을 입는 순간부터 세상은 달라졌다.
학원 가는 친구들이 늘었고,
나도 자연스레 밖보다는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즈음부터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운동은 즐거움이 아닌 다이어트의 수단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학교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발표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말했다.
"땀을 흘리고 샤워하는 순간이,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에요."
돌이켜보면 그 말이 나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냈던 것 같다.
운동은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체육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친구들과 함께 땀을 흘리던 시절,

나는 '같이'의 힘을 배웠다.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함께 나아가는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훈련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이란,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운동 코치를 꿈꾸며 체육 관련 전공에 진학했지만,

막상 배우는 내용은 내가 원하던 '트레이너의 공부'와는 달랐다.
그래서 스스로 필요한 지식을 찾아 공부했고,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배워나갔다.

졸업 후 피트니스 업계에 들어서며 현실을 마주했다.

나는 운동을 좋아했지만,
내 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트레이너가 되고 나서야 '몸 쓰는 법을 안다는 것'의 깊이를 알게 되었다.
근육을 조절하고 느끼는 일,
그건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내 몸을 느낄 줄 아는 만큼 설명이 가능했다.


회원들을 지도하면서 또 하나의 벽을 마주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자기 관리’의 일부로만 여겼다.
사실 나도 그랬다.
다이어트를 위해, 직업을 위해, 보여주기 위해 운동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운동은 겉모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한 일이었다.


내 몸의 감각을 배우고 익히며,
내 삶의 리듬에 맞는 운동을 찾아갈 때,

내가 이전보다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비로소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몸을 잘 쓴다는 건 결국 삶을 잘 살아가는 일과 닮아 있었다.


체력이란, 힘든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여지였다.

"웨이트를 하면 일상이 훨씬 쉬워져요."
"운동은 건강을 위해 하세요."
회원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한동안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실천하지 못했다.


운동의 동기가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살을 빼기 위해, 직업을 위해 운동을 하면
운동은 늘 '해야 하는 일'로 남는다.
그렇게 운동을 의무로 삼으면

언젠가 운동이 버거워질 때가 온다.


트레이너로 일한 지 4년,
하지만 ‘삶을 위한 운동’을 한 지는 이제 겨우 1년이 되었다.
좋아서 시작했던 운동의 본질을 되찾고 나니,
이제는 운동을 놓을 일이 없어졌다.


운동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자,
나와 나의 몸, 그리고 타인과 나를 연결해 주는 다리다.
내 몸을 사용할 줄 알면, 운동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나는 그 자신감을 함께 만들어주는 코치가 되고 싶다.
운동 배우는 시간이 케어받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나와 내 몸의 연결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를.


운동은 여전히 반복이 필요하고,
때로는 하기 싫은 날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겐 의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삶을 위한 운동은 의무가 아니라 존중이라는 것을.

내 몸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나를 움직이기로 했다.
해야 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서.


그것이 내가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이자,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짜 '운동의 가치'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