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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02. 2020

이런 날은 맛있는 국밥이 먹고 싶다



소고기 국밥(사진:이종숙)



오늘은 4월 1일이다. 예년 같으면 눈이 거의 녹아 봄을 맞는 시기인데 밖은 어제 온 눈으로 온통 하얗다. 아침 온도는 영하 17도로 4월의 날씨로는 아주 추운 날이다. 이런 날은 괜히 따끈한 국밥 생각이 난다. 뼈다귀는 없지만 며칠 전 대자가  남편 생일 선물로 가져다준 송아지 고기를 푹 고아서 배추 넣고 소고기 국밥이나 해 먹어야겠다. 국밥은 우리 한국사람들이 즐겨먹는 국민 음식이다. 반찬도 별로 필요 없고 밥 한 그릇 넣어서 후루룩 먹고 나면 맛도 있고 배도 부르다. 배고플 때나 감기 기운이 있거나 어딘가 몸이 찌뿌둥할 때 국밥 한 그릇 먹고 나면 기운도 나고 입맛도 되살아 난다. 그래서 그런지 서민들 식당에는 여러 가지 국밥이 많다. 곰탕 설렁탕을 비롯하여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감자탕 갈비탕 김치찌개 육개장 소고기 국밥  순대국밥 셀 수 없이 많은 국밥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각양각색 여러 종류로 발전해 왔다.


어느 식당을 가던 입맛에 맞는 국밥을 고르기도 쉽고 먹고 나면 잔치집에 다녀온 것 같이 기분도 좋다. 국밥은 언제나 유혹한다. 비가 오니 먹고 싶고 바람이 부니 생각난다. 배고플 때 출출할 때 허전할 때 국밥이 먹고 싶다. 외로울 때나 허탈할 때도 생각나고 감사함이나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도 대접하고 싶은 국밥이다. 이래서 먹고 저래서 먹는다. 추우면 추워서 먹고 더우면 더워서 먹는다. 날씨가 흐려서 날씨가 맑아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먹는다. 싸고 맛있고 먹고 나면 후련해서 먹는다. 인생살이 힘들고 지칠 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 먹는다. 기쁠 때는 신나서 먹고 슬플 때는 잊기 위해서 먹는다. 기가 막혀서 먹고 억울해서 먹고 속 터져서 먹는다. 국밥 한 그릇에 모든 설움을 담아 씹어 먹는다.

선지국밥 소머리국밥 돼지국밥 따로국밥 콩나물 국밥 셀 수 없이 많다. 푹 고운 국물에 우거지를 비롯해서 재료를 빡빡하게 넣은 국밥은 생각만 해도 푸짐하다. 그러나 그렇게도 푸짐하던 국밥이 세월이 흘러 인심이 사나워지다 보니 요즘엔 그야말로 멀덕국이다. 얇은 고기 몇 점에 파 한 숟가락이 전부이고 그 흔해빠진 채소도 몇 가닥뿐인 세상이 되었다. 배고픈 서민들이 싼값에 배부르게 먹으라고 생겨난 국밥인데 부자들의 전용 음식이 되었다. 살찌면 안 되고 배불러도 안 되는 주먹 만한 뚝배기에 예쁘게 나오는 신식 국밥은 인스턴트 음식이 되어 계를 돌아다닌다. 봉투에 넣어 마이크로 오븐에 데워서 먹는 편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 서민들의 전통음식은 한국을 알리는 새로운 음식으로 태어났다.

뽀얀 국물이 생길 때까지 은근한 불에 끓여 식힌 후 위에 뜬 하얀 기름을 걷어내고 다시 끓여 파와  마늘 그리고  고기 고명을 넣어 푸짐하게 만들어 주시던 엄마의 국밥이 생각난다. 한번 가지고는 턱도 없다며 몇 번이고 끓이고 끓여서 더 이상 뽀얀 국물이 안 나올 때까지 끓여대시던 엄마의 국밥이다. 그 국물로 배추 된장국도 만드시고 김치찌개도 만드신다. 순두부찌개도 만들어 주시고 비지찌개도 만들어 주신다. 특별한 그 무엇도 넣지 않은 평범한 음식이 엄마의 손을 통해 세상에 둘도 없는 맛있는 음식으로 태어난다. 앉은뱅이 밥상에 육 남매가 둥글게 앉아 맛있게 먹는 것만 보아도 행복하시다던 엄마의 국밥이 생각난다. 생전 해보지 않던 요리를 하던 신혼 때 갑자기 엄마 음식이 생각나서 단숨에 친정 가는 버스를 타고 간 적이 있다.

친정에 가보니 마침 아침식사 시간이었다. 엄마의 반찬이 상으로 하나 가득한 밥상에 앉아서 정신없이 먹었다. 배도 고팠었지만 엄마의 음식이 고팠던 것이다. 그날 먹었던 황태 콩나물 국밥의 힘은 정말 강력하여 살아가는 날들의 힘이 되었다. 그 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나의 국밥 실력도 늘어 맛있는 국밥을 잘 만드는 시어머니가 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며느리들이 집에 올 때는 커다란 솥에 국밥 준비에 바쁘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다는 엄마의 마음이 되어 실컷 먹고 싸서 주면 국밥을 좋아하는 며느리 들은 행복해한다. 국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큰며느리는 한국사람이니까 당연히 좋아하지만 둘째 며느리는 필리핀 사람인데도 국밥을 정말 좋아한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랐는데도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국밥이 없는 이곳도 나름대로 비슷한 국이 있다. 만삭인 몸으로 이민 온 지 24일 만에 큰애를 낳았다. 미역국을 끓여줄 사람도 없고, 산후조리를 해줄 사람도 없는 머나먼 타국 땅에서 나를 살려준 것은 옆집에 사는 서양 할머니의 국이었다. 꼬리뼈를 푹 삶은 국물에 토마토, 샐러리, 양파를 넣고 보리쌀을 넣어 압력솥에 푹 끓여서 매일 아침마다 가져다주었다. 국을 먹으며 몸도 건강해졌고 향수병도 없어졌다. 그 할머니도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이민 오신 분인데 이민 와서 말 못 할 고생을 했기 때문에 내 마음을 이해한다며 딸을 돌보는 친정엄마가 되어 한 달 동안 영양 국을 끓여주셨다.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도 안 통하는데 모르는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정성을 쏟아주신 그 할머니는 나에게 천사 같은 분이었다.


4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 눈 쌓인 밖을 쳐다보며 실로 오래 전의 일이 생각나 국밥이 먹고 싶어 끓이기 시작한 소고기 국밥은 알맞게 잘 익어가고 있다. 고춧가루 소금 간장 마늘과 생강을 넣어 배추를  주물럭거리다가 끓여놓은 고기 국물에 넣어서 끓여준다. 고기는 잘게 찢어 파란 파와 함께 고명으로 올려주면 맛있는 소고기 국밥이 된다. 국밥을 좋아하는 남편은 땀을 흘리며 맛있게 먹을 것이다. 오래전 감기 몸살로 심하게 앓은 적이 있는데 밥맛도 없고 기운도 없는데 맛있는 국밥이 생각났다. 지금은 없어진 한국식당에서  맘씨 좋은 아줌마가 끓여주셨던 맛있는 국밥이  이처럼 눈이 오고 추운 날엔  생각이 난다.


이런 날은 맛있는 국밥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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