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예측 불가 물체 391B
"가을이 오고 있어요."
유나는 창문을 닦으며 조용히 말했다.
서울 응급의료센터 2층 병동,
낮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유리창 너머 무늬를 그렸다.
은행잎은 벌써 노랗게 물들고 있었고,
미세먼지 경보는 이틀째 해제 중이었다.
이 평화가 어쩐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 시각, 지구 반대편.
NASA 관측소에서는
이름 없는 물체 하나가 다시 관측망에 포착되었다.
[Object 391B – 새로운 궤도 진입 감지]
[항성 명명 미정 / 속도 가변 / 질량 불확실]
지구와의 충돌 확률은 단 0.02%.
그러나 데이터팀은 알 수 없는 불쾌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스펙트럼이 일정하지 않아."
"규칙적인 궤도가 아니야. 예측 불가 궤도… 거의 살아 있는 것 같아."
그 말은 공식 보고서에 남지 않았다.
며칠 후, 391B는 비공식 명칭으로 등록되었다.
Atlas.
“세계를 짊어진 자”라는 뜻의 그 이름은
아직 인류 대부분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
유나는 병원에서 초과근무를 마친 채
지하철 안에 앉아 있었다.
이어폰에서 음악이 끊겼고,
갑작스레 정부 긴급방송이 송출되었다.
“시민 여러분의 안정을 위해,
전력 일시 중단 조치가 시행됩니다.”
열차가 멈추고, 조명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설명되지 않는 위기,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불안.
그것은 말없이 사람들의 곁에 자리 잡고 있었다.
며칠 후 병동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근무 중이던 간호사 다섯 명이
연락 없이 퇴사했다는 것.
정규직, 성실하고 평판 좋던 이들이었다.
“해외 이주했대요. 무슨 프로젝트?”
그 말을 듣는 순간,
유나는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뭔가가 점점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밤.
병원 사물함을 열었을 때,
그녀는 흰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LUNA ESCAPE PROJECT – 개인 탑승 검토 대상 통보서]
[코드명: L-1422 / 무작위 시민 선발 대상]
그 안엔 또 다른 쪽지가 있었다.
“말하지 마세요. 관찰 중입니다.”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직장, 집, 일상, 말투까지.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 무렵,
사람들은 하늘을 더 자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구름이 잘 흐르지 않았다.
달은 더 자주 보였고,
뉴스는 더 짧아졌으며,
기상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 사이트 한 귀퉁이에
‘대비 훈련 매뉴얼’이라는 문서가 올라왔다.
응급식량 보관법,
산소 부족 시 호흡법,
지하 대피 요령,
그리고 맨 아래 작게 쓰인 문장.
“하늘을 두려워하라.”
국제 뉴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기후 회복, 태양 안정기,
온실가스 감소를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SNS 어딘가에
단 한 명의 기자가 남긴 문장이 퍼지고 있었다.
“불안은 데이터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몸으로 먼저 온다.
그리고 지금,
나의 몸이 벌써 알고 있다.”
그는 이틀 후 계정을 삭제했다.
유나가 일하던 병원에도 이상한 변화가 많아졌다.
병상 수는 줄었고,
대기자 명단은 사라졌으며,
CCTV가 늘어났다.
감시받는 듯한 공기.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무언가가 오고 있다.
우린 아직, 말하지 않을 뿐이다.
어느 날 밤,
유나는 집 앞 우편함에서 다시 봉투 하나를 꺼냈다.
[L.E.S – 탑승 조건 재확인 / 감시 하에 있음]
그 아래,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문장이 손가락 끝에 느껴졌다.
“달은 아직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달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떠올랐다.
“선택받는다는 건, 살아남는 걸까…
아니면,
버려지는 걸까.”
유나는 탁자 위에 봉투를 내려놓고, 손끝으로 천천히 그 표면을 더듬었다.
'이 문서 하나가 내 운명을 바꿨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운명은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산이었고
그 계산은 더 이상 인간의 손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거실 불을 끄고,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커튼을 젖히자
달이 떠 있었다.
너무도 선명하게,
너무도 가깝게.
그 표면에는 크고 둥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건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느꼈다.
그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무언가는 지금—
지구를 보고 있다는 것.
달빛 아래,
유나는 자신의 몸이 이상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공포.
지구가 점점 조용해지고 있고,
그 조용함 속에서 자신만이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켰지만
뉴스는 더 이상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SNS는 고요했고,
메일함은 비어 있었다.
그런데 단 하나.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We are watching.
The moon is not a place of refuge.
It is a test.”
그녀는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달은 변함없는 얼굴로 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얼굴은
어디까지나 가면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