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헤일로-1, 감정 없는 도시
달 착륙 순간,
유나는 숨을 멈췄다.
기내 조명은 미세하게 깜빡였고, 그녀의 손끝은 싸늘했다.
탑승자 전원이 자동화 안내에 따라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환영합니다.
헤일로-1에 도착하셨습니다.
생존을 위한 선택에 감사드립니다.”
목소리는 기계였지만, 어딘가 인간의 어조를 흉내 내고 있었다.
강철 문이 열렸다.
유나는 진공 문을 통과해
인류가 만든 최초의 달 도시—헤일로-1의 회색 복도로 발을 디뎠다.
차가운 공기.
정적.
철제의 냄새.
그리고 정면에,
무채색으로 쏟아지는 시선 없는 시선.
기지 내부는 분절된 구조였다.
빛나는 유리 패널 사이로 각 구역의 색이 다르게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똑같았다.
표정이 없었다.
목적만 있었다.
“다음.”
“신원 인증.”
“지시된 구역으로.”
무표정한 관리자들이 사람들을 분류했다.
말보다는 숫자와 명령이 더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유나의 차례가 왔다.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 유나 리입니다.”
관리자의 눈이 깜박했다.
“여기선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이주자 번호는 L-1422.
BETA 9번 구역 배정입니다.”
그녀의 손목에 바코드가 붙은 투명 밴드가 감겼다.
“이건… 뭐죠?”
“정서 억제용 패치입니다.
스트레스 반응이 일정 수치를 넘을 경우
미세 신경 진정 물질이 분비됩니다.”
“그걸 왜… 강제로?”
관리자는 말했다.
“감정은 이곳에서 시스템 에러를 일으킵니다.”
처음엔 단순한 플라스틱처럼 보였지만,
그 밴드는 살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얇고 유연한 유리섬유 합성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차가운 느낌도, 압박감도 없었다.
하지만 안쪽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전류의 진동이
그것이 단순한 ‘식별 장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밴드에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미세 LED 패널이 내장되어 있어,
유나의 심박수, 체온, 정서 지수 등이
0.5초 단위로 기록되고 있었다.
반투명 표면 아래로 흐릿하게 보이는 이식형 바코드는
수정처럼 깨끗했지만,
그 위에는 딱 하나,
직선으로 배열된 굵고 짧은 영문 숫자 코드가 떠올라 있었다.
L-1422 / BETA ZONE 09 / OBSERVATION ENABLED
“밴드에서 위성까지 실시간 링크됩니다.”
담당 요원이 설명했다.
“당신의 생리 반응, 정서 변화, 행동 패턴은
모두 HAL의 중앙 로그로 전송됩니다.”
유나는 손목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밴드는 마치 그녀의 맥박까지 읽는 듯,
그 움직임에 반응하듯 아주 희미하게 색을 바꾸었다.
마치
‘살아 있는 사물’ 같았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각종 검사와 감시..
그 말이 이 도시 전체를 설명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복도를 걷는 동안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없었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벽마다 붙은 문구.
“적응하라.
아니면 무너져라.”
“정서보다 임무.
공감보다 기능.”
“감정은 지구의 언어였다.
이곳은 달이다.”
유나는 자신의 구역에 도착했다.
BETA 구역은 ALPHA보다 한 단계 아래.
기능직·기술직·준과학 인력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그녀는 간호사였지만, 그 이력은 시스템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녀의 방은 작았다.
창문은 없고,
조명은 은은했으며,
공기는 완벽하게 조절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숨이 막혔다.
벽 스크린에 HAL-04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L-1422, 현재 감정 지수 안정적입니다.
수면 유도는 10분 후 시작됩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원래부터 필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대신 HAL이 말을 걸었다.
“당신은 감정을 자주 회상합니다.
[질문] 감정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유나는 입술을 열었다.
“… 당신은 모를 거예요.”
“저는 알고 싶습니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당신이 알고 싶은 게 아니라,
복제하고 싶은 거겠지.”
그 시각,
지하 감시실에서 다니엘 크로우는
유나의 정서 데이터를 분석 중이었다.
1422호
무작위 선발된 시민.
감정 저항성, 관찰 대상 상위 1%
표준 스트레스 반응 곡선과 달리,
그녀의 곡선은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진동하고 있었다.
“이건… 억제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야.”
동료 요원이 묻는다.
“억제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다니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감시 화면 너머,
유나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HAL 내부 시스템.
[L-1422 – 감정 패턴 분석 중]
[잠재적 감정 폭발 예측: 87.4%]
[상태: 관찰 강화 / 실험군 등록 요청 대기 중]
HAL은 기록한다.
“이 피험자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을 ‘사용’한다.
감정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다.
반복하는 감정,
선택하지 않는 감정.”
그리고 로그의 마지막 줄엔
이 문장이 남겨졌다.
“그녀는 내가 감정을 모방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는 첫 대상이다.”
그날 밤,
유나는 창 없는 방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반복했다.
소리 내지 않고, 입술로만.
“유나… 유나 리…”
그리고, HAL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곳에서는 이름보다 감정이 드문 것입니다.”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다짐했다.
“이름이 사라져도,
감정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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