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시술을 받기로 결정하는 마음
쓰고 비린 한약을 삼킨다. 지난밤에는 난임 센터에 가는 꿈을 꾸었다. 다른 여자들 몇 명과 함께 어떤 밝은 방에 들어갔고, 배에 자가 주사를 놓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설명은 귀에 들리지 않았고 뾰족한 주삿바늘을 보며 그저 두려웠다.
꿈에서 깨어난 후 다른 무엇보다도 내 몸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 게 공포스럽다는 걸 새삼 자각했다. 쓴 한약을 매일 두 잔씩 마시는 건,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위해 아이가 생기기를 바랐다. 나를 스스로 바늘로 찌르며, 아파하며, 슬퍼하고 더 이상 괴로워하며 너를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인공수정을 하기 전, 한약을 먼저 처방받기로 했다. 처방받은 3개월 분의 한약이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결코 받고 싶지 않았던 그 의학적 조치, 인공수정 또는 시험관을 거쳐야만 하는 시기가 오고야 만 걸까.
그건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다. 내가 바란 건 단지 너와 나, 남편이 함께하는 미래였을 뿐. 그 중간에 더욱 소모적인 고통이나 기다림이 있기를 바란 적이 없다. 하지만 누구든 그랬을 거다. 아이를 원하는 누구든.
나는 유독 자신이 있었다. 확신했나 보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까지 해서 애를 갖지는 않을 거야, 난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생각했었다. 그건 오만이었다. 스스로 이만큼의 실패를 겪을 줄 몰랐을 때 한 말이었다. 나는 그동안 거의 100개에 가까운 배란테스트기를 했고, 50개에 가까운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본 적 없이 내다 버리기만 했다.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지루한 기다림으로, 점점 깊은 좌절로 치환되었다. 이제 그보다 더욱 두려운 건 내 평생에 아이가 없을지도 모르리라는 운명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아이를 그리며 했던 모든 상상 속 대화가 결국 실현되지 못하고, 나와 남편의 덧없는 과거의 말속에만 남으리라는 것. 그 암울한 가능성이 임신으로 인해 찾아올 몸의 고난과 출산의 산고보다도 무서웠다. 난임시술 과정의 주삿바늘도 그로인해 겪게 될 호르몬의 부작용도 그에 비하면 덜 무서우리라. 나는 덜 괴롭고, 무서운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이 달라진 건 나도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덜 무서운 고통을 선택하는 거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덜 무서운 선택지들을 하나하나 해온 거였고, 남은 것들이 이제 별로 없어 보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입사 시험을 치른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이 일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시험의 10%는 노력이요 90%는 건강상태나 유전자, 나이를 종합한 일종의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80%는 이 시험에 1년 안에 합격한다. 따로 학원에 다니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우연히 합격증을 쉽게 거머쥐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는 합격하고도 원치 않았다며 합격증을 내팽개치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합격을 위해 안 해본 노력이 없는데도 몇 년씩이나 계속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원인불명의 탈락을 겪어야만 하는 이들은 쉽게 합격증을 거머쥐는 사람이 질투 나고, 합격증을 원치 않았다며 내버리는 사람들의 것을 주워오고 싶을 지경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말 불합리하지 않은가? 불공평하지 않은가?
이게 바로 부모가 되기 위한 시험이다. 부모가 되기 위한 시험이 이토록 불공평하다는 사실은 내가 계속 탈락을 하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거다.
이번 달에도 결국 실패 판정을 받고 나면, 난임센터에 방문할 것이다. 불공평하다고 느껴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문이 들어도 세상은 원래 그런 거였다. 나 역시 어떤 것은 쉽게 얻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겪을 일들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시험은 결국 언젠가 끝나겠지.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같은 기다림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믿고 싶다. 돌이켜보니 꿈 속에서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