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진단서를 받았다. 난임시술에 대한 지원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났고, 소득기준도 이제는 없어져서(2025년 현재 기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병원에서도 익숙하고 당연한 듯, 잘 안내해 주었다. 불과 1,2년 전 블로그 글만 봐도 처음에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꼭 한 번은 보건소를 방문해야 한다는 절차가 있었는데 이제는 정부 24 사이트에서 병원에서 받은 ’ 난임진단서‘ 서류를 첨부하여 지원금을 신청하고, ’ 지원결정 통지서‘라는 서류를 출력하고 병원에 제출하기만 하면 되었다.
인공수정의 여정은 생리와 함께 시작된다. 생리 2일 차(혹은 3일 차)에 병원에 방문하여 배란유도제를 처방받는다. 알약으로 된 배란유도제는 생리 3일 차부터 일주일간 복용하게 된다. 약에 대한 반응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배란이 되는 정도에 따라 주사가 함께 처방되기도 한다. 혹은 처방되는 약의 개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첫 번째 방문으로부터 약 일주일 후쯤, 다시 병원에 방문한다. 난포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초음파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난포의 크기와 개수를 보고 시술 일정이 결정된다. 이때, 난포가 잘 자라지 않았거나 과도하게 배란이 된 경우에는 아예 다음 주기로 시술이 미뤄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술이 예정된 날, 남편은 2시간 먼저 정자를 채취하고, 아내는 2시간 뒤에 시술을 받게 된다.
시술이 끝이 아니다. 자궁내벽을 두껍게 유지시켜 주는 ’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제를 맞아야 한다. 이는 질정 또는 자가 주사로 처방받으며, 매일 또는 2~3일 간격으로 2주 동안 투여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술일로부터 2주 뒤에 피검사를 받고 임신 여부를 정확히 확인해야만 인공수정의 여정은 끝이 난다. 피검사 전에 생리가 시작되어도, 피를 뽑긴 뽑아야 한다. 난임시술 지원금을 받기 위한 필수 절차에 포함된 부분이라 그렇다고 들었다. 생리로 시작해서 임신으로 끝나든, 생리로 시작해서 다음 생리로 끝나든 위에 서술한 모든 과정을 거치는 기간은 총 4주쯤 된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신체적인 증상이나 어떠한 내적인 상태에 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인공수정을 행하는 모두가 겪게 되는 보편적인 절차만을 적었다. 복잡하다고도, 생각보다 할만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자연임신이 잘 되었던 사람에게는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과정일 테고, 시험관 시술의 과정까지 이미 겪어 본 사람에게는 인공수정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과정일 것이다. 시험관 시술에서는 여성의 몸에 더욱 큰 부담이 되는 ‘난자 채취’의 과정이 추가된다. 또한 보다 많은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배란유도제는 훨씬 고용량으로 처방받게 된다. 이후에는 배아를 배양하고, 냉동하고, 이식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포함된다. 고용량의 배란유도제를 처방받았던 만큼, 임신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위적인 호르몬제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프로게스테론은 더 오랜 기간 투여받아야 한다. 시험관은 과정이 추가되는 만큼 시술 지원금의 금액 한도도 더 높아지는데, 그만큼 자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인공수정이든 시험관이든, 아무리 견딜만한 과정이라 할지라도 최대한 덜 겪는 게 좋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 역시 이러한 소모적인 과정을 최대한 덜 겪고 싶었다. 아이를 원하는 마음의 크기가 곧 난임시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보여주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공수정을 시작하면서, 한도 끝도 없이 이 과정을 지속하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인공수정 1차에 되는 건 로또다 “
난임을 겪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한 번에 잘 될 가능성이 희박하니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겪어보니 다른 의미에서도 정말 그랬다. 로또를 살 때, 당첨될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왠지 내가 그 ’ 당첨‘의 주인공이 될 것만 같은 기대를 모두가 하듯이 나도 그랬다. 인공수정 시술을 받고 난 뒤, 임신이 되었는지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최소 2주를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그동안 ’ 당첨 후기‘를 게걸스럽게도 찾아다녔다.
로또는 기다리는 기간이 일주일이고, 종이 쪼가리 하나 사놓고 끝이지만. 인공수정은 그 두 배쯤 되는 기간을 기다려야 하고, 그 사이에 계속해서 질정이든, 자가주사든 호르몬제를 맞아야 한다. 그 와중에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든, 생리전 증후군 때문이든 ‘임신인가?’ 싶은 온갖 증상들, 예컨대 피곤, 졸림, 배가 콕콕댐, 몸이 으슬으슬함, 두통, 왠지 열이 나는 듯함… 등의 증상들을 계속 몸으로 겪는다. 이런 면에서는 인공수정은 로또 따위에 비교할 게 못 되는 것 같다. 그 모든 과정이 마치 노력의 영역이 아닌 것을 노력의 영역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뭐라도 더 하면, 임신이 될 것처럼.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동안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혹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과도하게 기대를 했기 때문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 점이 가장 괴롭다. 로또는 당첨이 되지 않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금방 수긍이라도 하지만 인공수정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기대라는 걸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있긴 할까. 단 천 원짜리 종이 한 장이 몇 십억 행운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게 인간인데. 노력한 만큼 임신이 되는 거였다면, 나에게도 분명 충분한 자격은 있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온갖 정보를 찾아보며 공부한 지는 벌써 2년이 넘었고, 엽산을 꾸준히 복용한 기간도 그만큼이었으며, 건강하게 먹는다고 나름대로 노력도 했다, 한약도 3개월 넘게 복용했고, 지금은 흑염소즙을 복용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술도 끊었다. 미래에 태어날 아이에 관한 많은 상상과 가정을 하며 사랑으로 키울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다. 더 남은 노력이 있다면 뭐란 말인가. 결국 이렇게 자문하게 된다. 답이 없다는 건 나도 안다. 내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누군가에게 조언이나 위로를 구하고 싶지도 않다. ‘마음을 편히 가지라 ‘는 조언도, ’금방 예쁜 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위로에도 벌써 무감해졌기 때문이다. 고작 인공수정 1차에도 나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온 것 같다.
인공수정 1차는 비임신으로 종결되었고, 곧바로 2차 인공수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내 마지노선은 인공수정 3차까지라고 정해놓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