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시술의 과정에서 남편의 역할
내가 주사를 맞아야 하면, 오빠(글쓴이가 남편을 지칭하는 말)가 해줄 수 있어?
인공수정 시술을 받기로 결정할 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자가주사’였다. 물론 약의 종류와 용량, 투입 횟수는 사람마다, 시술의 절차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인공수정 또는 시험관 시술을 받기 위해서는 그런 형태의 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스스로의 몸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인공수정의 다른 어떤 요소들(소위 ‘굴욕의자’에 앉아야 한다거나, 초음파를 보는 과정, 호르몬 투여로 인한 몸의 변화, 심리적 요인 등 거부감의 요소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남편 입장에서도 개인에 따라 정자채취의 과정이 마냥 수월하다고는 할 수 없다.) 보다도 주사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컸다.
난임에 관한 이런저런 정보와 경험담을 찾다 보면 자가주사를 놓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주사 맞을 부위를 알코올솜으로 소독한 후, 두 손가락으로 배꼽 근처 살을 잡은 뒤 주삿바늘을 찔러 넣고 주사기를 밀어 넣는다.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덜덜 떨며 식은땀이 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후자일 것만 같았다. 그렇게 태연하게 모든 과정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시술을 받기로 결정한다면, 결국 혼자 견뎌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상을 뒤적이다가 남편이 주사를 놓아주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브이로그를 꽤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주사를 놓아주는 영상은 정말 드물었다) 나는 그제야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남편이 바늘 공포증이 매우 심각하거나, 손을 심하게 떤다거나, 그 밖의 여러 이유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서 내 배에 바늘을 찔러 넣는 것을 나보다 더 두려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남편에게 물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인공수정 시술을 결정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남편은 나의 걱정 섞인 질문에 다행스럽게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라며 흔쾌히 말했다.
덕분에 나는 남편을 믿고 이 과정을 해보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남편이 만약 그 물음에 조금이라도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면, 나는 더 오랜 시간 망설였거나 끝내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공수정 2차를 거치는 동안 처방받은 주사의 종류는 세 가지, 폴리트롭과 오비드렐, 프롤루텍스 주사였고 모두 합하여 14회였다. 남편은 한 번도 귀찮거나 힘든 내색 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간호사의 역할을 자처하며, 주사를 놓아주었다. 처음에는 주사를 놓으며 ‘아파요~?’하고 물어보는 남편을 보고 주사를 맞는 도중에 웃음이 나서 배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남편 덕분에 두 번째 주사부터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아이가 쉽게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불운이었던 반면, 나에게 남편의 존재는 행운이었다. 그 든든한 사람이 있어서 인공수정 과정이 꽤 견뎌낼 만했다. 또한 1차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는 주기상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4회 중에 세 번이 토요일이었던 덕분에 남편이 연차를 쓰지 않고도 병원에 거의 계속 동행할 수 있었다. 2차 시술을 받을 때에도, 중간에 초음파를 봐야 했던 날만 제외하고 남편이 계속 함께 해주었다.
인공수정 과정에서 정자 주입 시술을 받는 날에 남편은 아내보다 두 시간 먼저 와서 정자를 채취하도록 되어있다. 병원에서 시술을 위해 정자를 처리하는 과정이 보통 두 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이 날 남편과 아내가 함께 병원에 방문하면 서로를 기다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 남편과 아내가 각자 방문하기도 한다. 우리가 거의 늘 동행할 수 있었던 건, 첫째로 내가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으며, 둘째로는 남편의 회사와 병원이 멀지 않았고, 셋째로는 남편이 탄력 근무제를 시행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건 또한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근무 시간, 병원과의 물리적 거리, 직장 내 분위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동행하지 못하는 부부들이 많다.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난임 부부에 대한 배려가 확대된다면, 이 과정을 함께 겪는 부부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운 좋은 조건과 남편 덕분에 내 경험에 한정하여 인공수정은 생각보다 견딜 수 있는 과정이었다. 시술받기 전에 걱정했던 것처럼 호르몬제에 대한 부작용도 없었는데, 부작용은 확률이 낮다고는 하지만 그야말로 ‘확률’의 문제이기 때문에 겪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인공수정을 누군가에게 ‘할만한 것’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어렵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을 남편과 함께 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건 있다.
난임 시술은 개인차가 있을지라도, 여성의 몸과 마음에 어떤 형태로든 부담이 되는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함께하며, 지지해 주는 남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학술적인 연구도 진행된 바 있다.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partner)의 정서적 지지(emotional support) 또는 심리치료가 난임 여성의 불안 감소뿐만 아니라 치료 순응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한다(Lobel et al., 1992; Simionescu et al. 2021).
따라서 난임을 진단받고, 시술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여성이라면 배우자와 함께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조사한 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있는지에 관해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난임은 앞으로 자녀를 낳고 기르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므로, 배우자의 역할에 대해 더욱 강조하고 싶다. 남편의 지지에 많은 힘을 얻었기에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난임은 여성만이 견뎌야 할 일이 아니라 남성 배우자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과정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