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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의 지난 10년을 대표하는 키워드 3개

내가 추구해 온 가치와, 이제 추구하고 싶은 가치

by 정소예

구글에서 만 10년을 채웠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 시스템 안에 10년 동안 속해 있었다. 새로운 챕터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10년’이라는 숫자에 괜히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 시간을 되짚어보며, 지난 10년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가 뭘까 생각해 봤을 때 세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생존과 균형

엄마로서, 엔지니어로서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겨우 버티기만 하는 것 같아 자책했던 날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잘 살아내고 있었다. 그 버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오기와 증명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던 순간, 오기가 생겼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 하나로, 그때부터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전을 하나씩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씩 성취를 쌓아갔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회적 가치의 추구

내가 진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사회 (정확히 말하면 회사 내의 분위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나도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 믿으려 했다. 승진, 연봉, 명함 속 직함 같은 외적인 지표가 나의 밸류를 높이는 길이라 생각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동료들과 나를 비교하며, 승진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 같았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잡고자 헉헉대며 달려가듯 주변의 잣대를 내 목표로 삼고 ‘나는 늦어졌다’는 생각이 가득한 채 10년을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나는 작년 말, 결국 크게 번아웃이 왔다. 그리고 올해 1월부터 휴직에 들어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지금 여기서 나는 뭘 하고 있나’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오랫동안 그 질문들과 씨름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조금씩 내가 왜 그렇게 방황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나 같은 경우 승진이나 연봉 같은 외적인 목표보다, 내가 진짜 몰입할 수 있는 일, 내가 ‘쓸모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훨씬 더 나를 움직이게 한다. 오랫동안 외적인 틀에 나를 맞추려 애썼지만,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내 본질과 긴밀하게 연결된 삶이라는 걸 인정하고 난 후 더욱 넥스트 스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방향을 바라봐야 할지는 이제 알겠는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와서야 “너의 꿈은 뭐니?”라는 질문에 처음부터 다시 답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불확실한 것 투성이지만, 이제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삶이 아니라 내가 찾고 정의한 문제를 풀며 살아가고 싶다. 두렵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해보고 싶다. 완벽하지 않을 것이고 많이 헤맬 테지만 적어도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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