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동안 나의 꿈은 교사였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갈 때쯤엔 무작정 교직이수를 할 수 있는 학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교사가 그래도 위계적이지 않고, 각자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업무를 보면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었던 이와 같은 선생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교직이수를 하기 위해서 문헌정보학과를 갔고 국어국문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처음부터 국어교사자격증이 목표였고 문헌정보학과는 단지 그 수단이었다.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나는 교사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사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생 하나하나에게 너무 마음이 가서 중립을 지키기 어려웠다. 내가 학생일 때 교사에게 느꼈던 편애라는 불편한 감정도 막상 교사가 되고 보니 더 예쁜 아이와 더 손이 가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또 누군가의 상처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교사가 될 수 없음을 교생실습에서 느꼈다. 단지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되었다면 오히려 쉽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단지 직업으로 교사를 선택하는 것은 내 손을 거쳐갈 수많은 아이들에게 너무 큰 불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간절함을 놓아버렸다. 임용고시를 치렀지만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임용고시를 치르면서 취업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다 보니 사서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사서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이었다. 일단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라 내가 마음을 쏟고 열심히 하면 바로바로 얼굴을 맞댄 이용자로부터 피드백이 왔다. 내가 마음 쓰는 만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두 번째는 직원들 간의 위계가 일반 회사처럼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직급도 있고, 직책도 있지만 서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는 것, 업무의 범주 내에서 터치가 없다는 점, 그리고 상당 부분 기획할 수 있고 컨트롤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윗 직급의 지시로 업무가 이루어진 다기보다는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았다. 세 번째는 책을 곁에 두고 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을 시간까지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손을 거쳐가는 책을 통해서 시대의 흐름이라던지, 사람들의 관심사를 관찰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도 좋았다. 하나의 부품에 불과한 직장생활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나가고 그 걸어 나간 길이 바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좋았다.
나는 지구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집착이나 애착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게임같이 중독성이 강하다고 하는 것도 한 달을 채 견디지 못하고 내던지곤 했다. 늘 같은 패턴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견디기 어려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지겹지 않은 유일한 것이 바로 사서라는 직업이다. 아마도 오랫동안 지겹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사서라는 직업일 것 같다. 13년 동안 나는 같은 일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매년 다른 일을 한다. 업무가 바뀌지 않을 때도 있다. 가끔은 자료를 구입하는 일을 연속으로 할 때도 있고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일을 연속으로 맡을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기는 것이 매년 다르다. 결과도 매년 다르고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이 몹시도 좋다. 매년 바뀌고 매년 새롭고 매년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지겨울 겨를이 없다.
사서라는 직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권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나의 경우 매년 새로운 업무를 하는 것과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좋지만 또 내가 아는 어떤 사서는 10년째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같은 일을 반복해서 좋다고 한다. 사서가 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백명의 사서가 있다면 백명의 사서는 다 다른 일을 할 것이다. 사서의 업무는 너무나 많고 다양해서 그 안에서 어떤 길을 걸을지는 또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몫이다.
사서들 중에는 어떤 분야의 전문적인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사서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서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비스하고 장애인과 관련된 자료를 연구하는 장애인 전문 사서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어린이와 관련된 자료를 연구하는 어린이 전문 사서가 된다. 문화기획자로서 서비스하고 문화기반시설로서 공공도서관을 발전시키는 것을 연구하는 사서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정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사서는 또 일부일 것이다. 백 갈래 천 갈래의 길이 있기에 그 길에 들어서서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없는 사서들도 많다.
"나에게 최악의 남자가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남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너무나 잘 맞고 지겹지 않은 직업이지만 누군가에는 지겨워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도 가끔은 놓아버린 꿈을 되돌아볼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아마 10년 후에도 사서를 하고 있을 것 같다. 되돌아보고 후회하는 시간보다 사서라는 직업에 몰두할 때가 훨씬 많다.
가끔은 내가 사서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사서가 될 운명이 나를 끌어당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친구가 노트에 갈겨쓴 도서부 지원서로 고등학교 때 도서부원이 되고, 교사라는 길을 포기하고 좌절할 때 눈에 띄는 공공도서관 채용 공고를 발견하고, 좋은 사수와 동료들을 만나서 배려받으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어쩌면 운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흔들리면서 지나온 13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시간 그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늘 행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늘 불행한 것도 아니었던 어쩌다 시작된 사서살이를 13년 째 하고 있는 사서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