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들려드리지 않았던 나의 과거 이야기 1
내용이 길어서 2부로 나눠 연재하겠습니다.
저는 가끔 심심할 때 제 닉네임을 검색해 보곤 합니다. 그러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책 리뷰나 이 티스토리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 주셨고 그 글들을 읽을 때마다 참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저를 수익형 블로그 운영자로 분류하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운영 중인 이 블로그는 수익형 블로그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좋아서 쓰고 싶은 글을 꾸준히 올리는 공간일 뿐이며 그 결과로 애드센스 수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애초에 수익을 목표로 했다면 저는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저 또한 20대에는 돈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 시기에는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셨을 겁니다. 돈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고 생활이 되어야 삶이 유지되며 돈이 많을수록 행복의 기반이 갖춰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흔히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라고 하지만 그 말은 사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작 돈으로 행복을 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입장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돈이 많으면 기본적인 삶에 큰 불편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요즘 이런 질문을 던지면 많은 이들이 후자를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돈 없는 소크라테스 vs 돈 많은 돼지”
저 역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돈을 좇아 살던 시기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물론 돈 많은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돈 없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20대에 그저 돈 없는 돼지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정말 미친 듯이 헌신했습니다. 그 시기 저는 연애조차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시절 잠깐 사귀었던 첫 여자친구 이후로 20대 내내 이성 관계는 없었습니다. 물론 사귀고 싶었습니다. 젊고 혈기가 넘치는 나이였으니까요. 그러나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비용과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애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 연애를 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제가 연재 중인 작품은 “넷웍마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웹툰입니다. 웹툰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심스러운 퀄리티일 수 있지만 나름 성실하게 제작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실제 제20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불법 네트워크 마케팅에 참여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돈을 향해 무작정 달렸습니다. 그래서 그 선택을 했습니다. 제대 직후였고 사회 경험이 부족했던 시절이기에 불법성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지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 그 조직에서 소위 성공자라 불리는 “다이아몬드” 직급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그 위치에 도달하니 스트레스는 더 커졌고 결국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탈퇴 과정에서도 윗선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으나 제 성격상 흔들리지 않았고 마침내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불법 네트워크 마케팅 경험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미리 살짝 스포를 하자면 “넷웍마의 추억”은 이 과정을 총 세 기로 나누어 연재할 예정입니다. 1기는 첫 접촉부터 손님으로 참여하고 투자 후 진급하는 과정 2기는 진급 이후 다이아몬드까지 올라가고 그 과정에서 겪은 상황과 탈퇴까지의 이야기 3기는 그 이후 다시 마주하게 된 두 개의 다른 네트워크 마케팅 경험을 다룰 예정입니다.
이 지점에서 그만둘 수 있었다면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돈에 대한 욕심을 놓지 못했고 다이아몬드 직급에서 내려온 뒤 뒤처진 기간을 만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다 마침 “재택부업”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퍼X트드림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방식이 있었고 휴대전화만으로 진행할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구조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련 종사자들은 각자 카페나 블로그를 운영했고 통장에 찍힌 1일 고수익 인증을 앞다투어 내보였습니다. 하루에 백만 원 혹은 그 이상을 벌어들이는 모습을 보며 저는 드디어 답을 찾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이전의 다단계처럼 큰 투자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휴대폰 개통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기에 진입 장벽이 낮았습니다. 또한 다단계는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는 위험 요소가 있었지만 온라인 재택알바는 단순 홍보만으로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쉽게 다가갔습니다.
조금 더 이 업계를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선임이 마치 자신을 희생해 후임에게도 고수익을 얻게 해 줄 것처럼 접근한다는 사실을요. 저 역시 그 말에 기대를 걸고 휴대폰을 개통한 뒤 본격적인 온라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에서 첫 블로그를 접한 시점입니다. 플랫폼은 네이버였습니다. 이 업계에서는 이런 활동자를 “딜러”라고 불렀습니다. 당시에는 다음 블로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유독 네이버가 중심이었습니다. 아마 사용자 수와 검색 노출 영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분야 또한 경쟁이 극도로 치열했습니다. 상위 노출을 위해 서로의 먹잇감을 빼앗기지 않으려 별 수단이 다 동원되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선임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제 블로그를 개설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선배님처럼 고수익을 벌고 싶습니다.”
“우선 상위노출을 잘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상위노출이 되나요.”
“제목에 키워드를 두 개 넣고 본문에는 열 개 이상 넣으세요. 이미지는 열 장 이상 넣고 가능하면 동영상도 투입하세요. 글자 수는 꼭 1천 자 이상이어야 합니다. 우선 이렇게 쓰기 시작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저는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러나 상위 노출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시대로 해도 노출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초기라 그렇습니다. 더 하셔야 합니다. 1일 1 포스팅은 반드시 유지하세요. 어느 시점이 되면 자연스러운 노출이 시작될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걸까요.”
“네. 저도 선임에게 그대로 배워 지금처럼 유지하고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임과의 연락은 점점 닿지 않았고 결국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휴대폰 환불 기간이 지나가는 시점과 맞물렸습니다. 그 이후 블로그는 오롯이 제가 관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력자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혼자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으나 퍼X스트드림으로 의미 있는 수익을 얻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단 한 명을 성사시킨 것이 전부였고 그 이후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저는 나름 진솔하게 글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재택알바 활동은 점점 부담이 되었고 특히 넷웍마 시절의 대출금과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압박이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제가 평소 좋아하고 관심을 두던 IT 제품을 검색하다 우연히 어떤 IT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댓글을 통한 소통 또한 활발했습니다. 방문자 수도 하루 천 명을 훌쩍 넘는 규모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깊은 부러움과 동시에 확실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나도 이런 블로그를 갖고 싶다.”
그 순간부터 좋아하는 IT 주제로 글을 작성해 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글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자 방문자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사용하던 닉네임은 “딜러 친절한 효자손”이었으나 더 이상 딜러 활동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과감히 딜러라는 표기를 지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비로소 “친절한 효자손”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온전히 사용하며 진정한 IT 블로거로서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블로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이미 네이버 블로그를 초기화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다만 이 시작 역시 순수한 동기만은 아니었습니다. 관심 분야의 글을 작성하면 자연스레 방문자가 늘고 그러면 퍼X트드림 관련 글 역시 노출되어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기대와 달리 수익은 여전히 0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사심을 품고 IT 글을 작성할 때 글은 도리어 재미가 없었고 스트레스만 가중되었습니다. 사심 없이 글을 쓸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고 이를 스스로 체감하며 결국 완전히 사심을 내려놓고 온전히 좋아하는 글만 쓰겠다고 결심했어요.
이후 블로그는 점점 즐거운 공간이 되었습니다. 방문자 수는 꾸준히 상승했고 어느 날은 하루 2만 명 이상 유입되기도 했습니다. 3만 명을 눈앞에 둔 시점부터는 블로그를 양도해 달라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제품 홍보 요청이나 체험단 제안도 쏟아졌어요. 그 시기에는 모든 것이 설렜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다시 어두운 욕망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돈이라는 목표를 완전히 놓지 못했고 단지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생계는 생산직 일로 유지하고 있었기에 넷웍마 시절 발생한 빚은 모두 상환한 상태였고 이에 따라 숨을 돌릴 여유가 찾아온 때가 바로 서른 살 즈음이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역시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었기에 그 무렵부터 수익이 될 만한 글들을 무분별하게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해서는 안 될 선택이었어요. 지금의 이해와 관점으로 당시 블로그를 운영했더라면 훨씬 더 큰 규모로 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나간 일입니다. 수익 중심의 콘텐츠를 남발하자 상위 노출은 점차 어려워졌고 방문자 수는 급격히 줄었습니다. 결국 블로그는 이른바 저품질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네이버 블로그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판단해 체험단 활동으로 전환하며 다시 회복을 시도했습니다. 위험 부담이 크지 않은 체험단이라면 오히려 블로그가 회생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뜻밖에도 체험단 활동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하루 세끼를 모두 체험단으로 해결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당시 활동지는 서울이었는데 체험단 기회가 가장 많았기 때문입니다. 간혹 현금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체험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이미 블로그는 저품질 판정을 받고 있었는데도 체험단 의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지점에서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많은 체험단이 블로그 상태를 꼼꼼히 검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점을 알게 된 뒤 체험단 활동을 과도하게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생산직 일을 쉬던 시기였던 만큼 모아둔 돈은 점점 줄어갔고 체험단 자체는 좋았지만 이후 후기를 작성하는 과정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글을 정성스럽게 써야 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순수하지 못한 글이라는 자각이 있었기에 억지로 쓰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물론 정말 훌륭한 맛집이나 좋은 경험의 경우에는 진심을 담아 작성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했어요.
생활비가 한계에 다다르니 체험단 활동만으로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 취업 준비를 하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때 마침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PC 엔지니어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주저 없이 이력서를 넣었지요. 면접도 가장 먼저 진행됐고 다행히 좋은 인상을 드렸는지 합격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서비스 엔지니어로서의 하루가 시작되었어요. 물론 동시에 네이버 블로그 체험단 활동도 틈틈이 했습니다. 저품질 판정을 받은 상태라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진심을 담아 글을 쓰면 언젠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만 믿고 멈추지 않았지요. 그렇게 PC 엔지니어로서의 삶과 블로그 운영은 약 2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고장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소통되는 분들이라면 전혀 문제없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노트북 액정이 스스로 깨졌다며 무상 교체를 요구하는 이도 있었고 와이파이 AP명이 표시되는 것을 해킹 흔적이라 주장하며 노트북 전체 교환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윈도 95가 설치된 노트북을 들고 와 수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자재도 없고 고친다 해도 정상 사용이 불가한 기종인데 말입니다. 넷북 유행기에는 화면 수평이 아주 미세하게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체 환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처럼 상식 밖의 고객 유형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고 제가 일하던 센터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경찰이 출동하곤 했습니다. 주로 휴대폰 파트에서 난동이 발생했기에 저는 직접 맞닥뜨릴 일은 적었지만 센터 분위기는 늘 시끄러웠지요. 결국 이런 환경을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고 저는 2년 반 만에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즈음 과거 네트워크마케팅 활동 시절 제 하부에 있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마케팅이라고 소개하며 수익성과 비전을 강조했고 더 큰 기회가 있다며 참여를 권유하더군요. 한 번 크게 데인 경험이 있었기에 보통이라면 거절했어야 했지요. 하지만 당시 저는 여전히 금전적 욕심을 완전히 놓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발 내디뎠고 다행히 초기 투자금은 약 100만 원 정도로 큰 부담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여러 감정이 뒤섞인 시기였습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