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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이 Jul 29. 2024

김니모와 도레미


“그런데 나는 아직도 도레미야? 너는 아직 김니모인데.”


내가 그렇게 묻자 두 글자로 답변이 왔다.


“ㅇㅇ”


얘의 핸드폰에 내 이름이 아직도 ‘도레미’로 등록되어 있는 것이 우스워 나는 답했다.


“언젠가 너에 대한 글을 쓰면 꼭 이 이야기부터 써야겠다. 우리가 ‘김니모’와 ‘도레미’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는 우리가 좆같은 회사에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자 바로 답변이 왔다.


“좆같았지 암암.” 


우리는 어느 출판사에 만났다. 세상에 상식 밖의 회사가 많음은 알고 있지만 내가 겪은 회사 중에 제일 구린 회사를 고르자면 이 회사를 고를 만큼 아득한 회사였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적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 치명적인 출판사에서 나는 편집자로, 니모는 마케터로 일했다. 오랜 구직 생활로 지친 나는 출근 전 절대 올 해 안에는 그만두지 말라는 합격 전화에 호언 장담했다. “그럼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당부엔 이유가 있었고, 어떤 일에든 쉽사리 다짐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기만 했다.


쉴 새 없이 그만두는 사람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 각자의 직무에 맞지 않는 온갖 잡일보다도 우리를 두렵게 한 것은 자신을 욕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이사의 편집증이었다. 그는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켜져 있던 어느 컴퓨터의 메신저 파일을 통째로 백업해갔다. 그리고 그것을 읊으며 몇 명의 사람을 해고 시켰다. 회사에 오래 다니지 않아 그 욕에 크게 부흥하지 않은 게 니모와 내가 살아남은 이유였다.


“무슨 북한인 줄.”


피의 숙청이 끝나고 나서 내가 말했다. 니모는 답했다.


“아오지 탄광도 이것보다 심하진 않을 거예요.”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밥을 먹고 1,300원짜리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회사 근처 어느 벤치에 앉아 한숨 쉬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다. 회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그 벤치에 앉아 있으면 멀리서 아직도 그만두지 않은 디자이너 대리님이 힘차게 걷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가 심란한 표정으로 열심히 걷는 걸 지켜보며 나는 말했다.


“이러다 우리도 좆되는 거 아니예요?”


“그럴 수 있지.”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우리도 걸리면 어떻게 해.”


“일단.... 이름이라도 바꿔 볼까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김니모와 도레미로 변경했다. 카카오톡을 켤 때마다 이사가 우리 뒤에서 물끄러미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채 2주를 채우지 않고 그만뒀고, 니모와 나의 업무는 이어달리기 업무처럼 서로에게 바톤을 넘겨주며 이어졌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그만 둘 수 없었다. 이곳에서 버티지 못한다면 어디에도 더는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절망이 확실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내가 책의 마감을 하는 순간, 니모는 이 책을 홍보할 세상의 온갖 업무들을 끌어안았다. 우리는 때로는 서로에게 업무를 떠넘기며 어쩔 수 없는 눈으로 봤다. 마감이 끝나기도 전에 보도자료를 재촉하는 니모에게 적당히 좀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가 쭈뼛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나 역시 별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우리는 업무 메신저를 끄고 다급하게 카카오톡을 켰다.


“시발. 일이 너무 많아요.”


“시발 한 번 칠 때 열 번 치게 만들어야 함.” 


그런 종류의 대화는 매일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어서 이제는 더는 욕이 욕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떤 모욕을 견디는 수밖에 없는 날들이 이어질 때마다 우리는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조금씩 파괴하고 희미해졌다. 


눈물이 많기로 소문난 내 앞에서 니모는 몇 번이나 눈물을 터트렸다.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 앞에서 나는 마땅히 해줄 말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라고도, 다 집어치우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얘가 빨리 일을 해줘야 나도 퇴근할 수 있는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힘을 주어 말했다. 


“에휴. 그래. 울고 싶은 만큼 울어. 괜찮아요.” 


니모가 우는 게 너무 속상해서 몇 번이나 따라 울고 싶어졌지만 꾹 참았다. 내가 우는 날에는 얘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얼마나 어른스러워지는지 알아서였다. 나는 니모의 등을 토닥이며 ‘다음번엔 내가 울겠지’ 생각했다. 마음 약한 우리도 서로를 위해서 한 번씩은 강해져야만 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마다 하이파이브를 짝 하듯 서로의 약함을 조금씩 넘겨받으며 회사를 다녔다. 동시에 어떤 무엇을 해서라도 버티고 싶을 만큼 우리가 이 일을 잘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니모가 있어서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얘도 그럴까? 당장이라도 땅이 꺼져라 우는 애를 보면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때려 쳐. 그만 둬.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저 다음번에 내가 울 때 잘 부탁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등을 토닥였다. 얘와 조금 더 함께 일하고 싶다는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을 감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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