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원에게 보내는 퇴근길 편지
식구(食口) 여러분,
1. 신입직원 온보딩 미팅 시에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사회문제에 다른 직장인들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 회사 미션이 '이 나라 사회문제 중 매우 중요한 부분 - 영어교육 - 을 개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육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OpenAI가 기본 소득을 연구하는 자회사(Open Research)를 둔 이유도 그들의 AI 기술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생활을 하려면 성인지 감수성, 장애인 차별금지, 종교, 인종에 대한 차별금지 등 별의별 인지와 감수성이 기본이지만 우리 회사는 사회문제 감수성이 특히 중요합니다.
근래에 면접을 본 지원자가 세상과 담쌓고 있는 것 같아 시사 문제 몇 가지 물어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기 또래와 밀접한 이야기인데도 뉴스도 안 보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이 확인되어 탈락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정치 성향을 묻는 이상한 회사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회사는 그 사람의 정치성향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가 속한 사회의 주변을 돌아보며 사는지가 관심사입니다. 지금도 자기가 왜 떨어졌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원 중에는 이런 사회 무관심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아 ~ 미션이고 뭐고 다 됐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해야지. 그래서 월급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우리 회사 앞 길 코너에 있는 '생활맥주' 창업자 얘기입니다. 맥주 가게조차 '이윤 추구가 사업 실패의 원인'이라고 얘기하는 재밌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월급을 많이 받으려면 회사의 미션이 성공적으로 수행이 되어야 합니다. 잠은 오는 것이지 찾아간다고 잡히지 않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3. 우리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회사 식구 중 이 사회의 혜택을 입지 않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집필한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하고 공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의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저는 강남에서 자랐습니다. 동네 친구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모임을 합니다. 그들 중에 극우적 사고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습니다. 집안이 부유하고 학벌이 높을수록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진보 세력이 분배를 강조할 때면 거품을 물고 비판을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룩한 성과인데, 나 밤새워 공부할 때 지네들이 뭘 했는데....". 전형적인 능력주의(Meritocracy)적 사고입니다. 정치인 중에서도 능력주의를 천명하는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대선에도 출마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이기적이거나 인간성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닙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을 뿐입니다.
4. 퇴근길에 손석희와 최재천의 동영상을 보세요. 우리도 사업을 이런 마음가짐으로 합시다. 퍼주는 가게, 망하는 경우 없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 영업본부는 고객을 상대할 때 항상 갈등을 겪어야 합니다. 퍼주자니 이윤을 생각 안 할 수 없고, 이윤만 생각하자니 '보편적 확산'이라는 회사 미션과 부딪히고. 잘해주고 싶은데 진상 어머니, 돈 밖에 모르는 학원장을 보면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고. 사장은 퍼주라고 하면서 동시에 매출 얼마했니, 이익률은 얼마니 하면서 미친놈처럼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해대고. 영업 마케팅은 매일같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살아가는 고통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영업본부가 가장 폼이 나는 겁니다. 전투에서 돌아와 보급부서와 지원부서에게 '너 날아다니는 총알 피해 봤어?' 하면서 영웅담을 늘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저는 종이 신문을 봅니다. 포털을 통해 전달되는 뉴스와 알고리즘을 타고 내 눈앞에 던져지는 파편화된 뉴스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종이 신문을 보면 어떤 정보가 1면에 실렸는지, 어떤 단어가 반복적으로 도배가 되는지, 어떤 뉴스가 크게 혹은 작게 다뤄지는지 한눈에 파악이 됩니다. 종이 신문을 오전에 보고 나면 라운지에 놓을 테니 점심시간, 휴식 시간에 펼쳐 보세요. 여러분 또래가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가 채상병인지 최상병인지, 육군인지 해병인지는 알고 사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그 가해자 집단이 최근에 불거진 삼부토건 주가 조작으로 100억을 해 먹은 것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수수께끼 같은 현실을 직시해 봅시다. 여러분이 지나친 또래 군인의 죽음이 여러분이 투자하는 주식시장과 연관이 있는 이 아이러니 가득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의 뿌리는 교육문제에서 비롯되기에, 우리의 미션이 더더욱 엄중한 것입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