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동아 연재 칼럼 <김성윤의 영어첫단추> 3회차
미국에는 ‘강아지에게 책 읽어주기(Read to Dog)’란 프로그램이 있다. 주로 초등 저학년 아이들과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ESL)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전문 지원기관에서 댕댕이를 학교나 도서관에 데려오면, 읽기를 잘 못하는 아이들이 그 앞에서 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 큰 효과가 있어 1999년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계속 확산되고 있다. 아이들의 어휘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자신감, 자존감, 긍정적 사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성적이 오르니 부모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왜 효과가 있을까? 강아지가 알아듣도록 더 집중해서? 마음이 편해서? 실제로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줄고, 마음이 안정되어 심박수도 낮아진다고 한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강아지들은 지적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 읽었네”, “발음이 이상해”, “the/a 빠졌어” 같은 지적도, 고쳐주려는 시도도 없다. 그저 묵묵히 들어줄 뿐이다. 특히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외국어 불안감(Foreign Language Anxiety, 이하 FLA)이 사라져 영어가 더 빠르게 느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처럼 언어 습득의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스트레스 없는 환경, 즉 즐거운 환경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즐거워야 스스로 하게 되니까. 이는 인지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가 길을 가다 멧돼지를 만났다고 치자. 상상해 보자. 어떤 생각이 들까? 앞이 캄캄할 것이다.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겁을 줘서 도망가게 해야 할까? 이 순간 우리 몸에서는 각종 긴장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중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C₁₁H₃₀O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르티솔은 흔히 ‘싸울래 아님 튈래(Fight or Flight)’ 호르몬으로 불린다. 생존이 걸린 순간이기 때문에, 소화 기능과 언어 중추는 일시적으로 마비된다. 지금은 먹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먹힐 상황이고, 멧돼지와 말로 해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코르티솔은 오직 도망칠지 맞설지 빠르게 결정하고, 근육이 반응할 수 있도록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런데 이 코르티솔, 또 언제 많이 분비될까? 시험 볼 때다. 시험을 잘 보고 싶을수록 더 많이 나온다. 정작 시험 당일보다 전날이 더 긴장되는 이유다.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거나,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분비된다. 엄마나 선생님이 자꾸 지적하고 고치려 들면, 고맙기보다는 짜증 나고 피하고 싶어진다. FLA가 올라가고, 결국 영어 자체가 싫어진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해도, 같은 반 친구만 칭찬받고 상을 받으면 영어가 싫어진다. 비교당하는 것도 스트레스 요인이기 때문이다. ‘학습형’ 영어 유치원 출신 중 영어 혐오증을 가진 아이들이 많은 이유를 이제 알겠는가? 평가를 의식한 학습은, 적어도 언어 습득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을 위해 10년을 넘게 영어를 공부했는데도 여전히 영어가 안 되는 이유를 이제 알겠는가?
“he go to school이 아니라 he goes to school이라고 몇 번 얘기했어? 3인칭 단수 뒤엔 동사에 s를 붙이라고 했잖아!”
대치동 학원가 건물 1층 E카페에서, 엄마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다소 통통한 아이의 학원 숙제를 봐주다가 폭발했다. 필자의 실제 목격담이다. 나는 그 아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보였다. 스트레스 상황이 만성화되면, 코르티솔은 뇌의 편도체 활동을 증가시키고 해마 기능을 손상시킨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해마가 손상되면, 학습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보상 심리로 단 음식을 찾게 되고, 그로 인해 비만, 면역력 저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를 꼭 때려야만 아동학대가 아니다.
직전 칼럼에서 자녀를 ‘행운아’로 만드는 법을 하나씩 소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자, 첫 번째 비법이다.
영어 습득을 위해 아이에게 편안한 환경(low anxiety environment)을 만들어주자.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에서 도서관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 중 하나다. 지적질은 멈추고, 주기적으로 도서관에 함께 가라. 그리고 양질의 영어 콘텐츠를 마음껏 즐기게 하라.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책을 함께 읽는 것부터 시작하자. ‘아이가 골라온’ 책을 부모도 같이 읽자. 영어 문제집은 옆집에 주시고.
즐겁지 않으면 뇌는 언어 습득을 거부한다.
누가 이렇게 설계했는지, 우리의 뇌는 참 신비롭지 않은가?
두 번째 비법은 다음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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