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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은 꼰대인가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by 김성윤

스탠포드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다.


"위대함은 높은 지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인격은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시련과 고통을 겪은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래서 다르게 표현하는 법은 모르겠고, 스탠포드대 학생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충분한 고통과 시련을 겪길 바랍니다.(for all you Stanford students, I wish upon you ample doses of pain and suffering.)"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기업인이 이런 얘기를 20대 학생들에게 했다가는 꼰대 소리 듣기 딱 좋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힐링 책에서 금수저가 쓴 꼰대 책으로 장르 전환이 된 것 처럼 말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은 부모 세대보다 못살게 된 MZ 세대에 대한 미안함이 저변에 깔려있어 더더욱 민도가 높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젊은이들로부터 꼰대를 넘어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세대 간의 격차는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 그래프로 확연히 드러났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세대 간의 격차보다 2030의 남녀 간의 대립이다.

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별나게 도드라지는 증상이다. 2021년 영국 Kings College가 전 세계 28개국 23,000명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남녀 갈등, 빈부 갈등, 종교 갈등, 세대 갈등, 학력 갈등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우린 정말 독특하다 못해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나 같은 X세대 꼰대는 남녀 간 갈등을 보면서 '얘네들 결혼할 생각도 없겠는걸, 출생률이 더 떨어지겠네' 하며 이해 못 할 현상에 대해 혀만 차게 된다.


2030의 남녀 대립은 안티 페미니즘으로 이대남(20대 남성)을 부추기는 정치가 한몫을 했다고 본다. 분열시키면 다루기가 손쉬워지는 정치공학을 너무 빨리 배운 똑똑한(?) 젊은 정치인은 이미 괴물이 된 듯하다. 더 나아가, 극좌를 빨갱이 주적으로 규정하고 극우를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다진 보수 참칭 정치는 모든 것을 대결 구도로 전염시켰다.


꼰대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X세대인 DJ DOC의 이하늘은 97년에 이런 노래를 내놓았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 먹지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요요요


꼰대라는 말이 지금 만큼 흔히 쓰이지 않았던 때라 옆집 아저씨가 꼰대로 등장한다. 그러던 이하늘도 지금은 50대 꼰대에 합류해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세대의 순환'은 인류 역사에서 늘 반복되었다. 지금 50대가 20대였던 때는 IMF로 나라 경제가 초토화되었던 시절이다. 필자는 당시 전세대출 이자 22%를 내면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군대로 피신해 있으면 먹여주고 재워줬을지 몰라도 급여는 1만 원을 넘지 않았다. 젠슨 황 버전의 Pain and Suffering이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5060이 20대였던 시절은 군사독재와 맞서 싸우느라 최루탄 자욱한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 시련과 고통으로 단련된 4050은 지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세대가 되었다. 또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면서 경험도 가장 폭넓게 쌓은 세대다.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 모두를 책임지는 양손 접시 돌리기의 달인들이다. 현실 감각과 경륜에서 나오는 판단력은 정점에 이르렀다. 이 세대가 정신 차리고 있어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 또는 중진국에서 태어난 4050과 달리 2030은 선진국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2025년 병장 월급이 150만 원, 국가지원금 받으면 205만 원까지 받는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러나 0%대 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기회가 없어 가장 우울한 세대다. 집값은 말해 뭐 하랴.


R&A Rule Book 1.1
play the course as you find it and play the ball as it lies


결국은 공이 놓인 그대로 쳐야 하는 골프의 룰처럼 'Play as it lies'는 세대를 초월하여 모두가 지켜야 하는 국룰이다. 어느 세대나 젊음은 도전의 연속이다.


지금의 2030이 4050이 될 무렵에는 ample dose of pain and suffering을 먹은 꼰대가 되어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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