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라한 밥상

귀향

by kseniya

남들에게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귀한 일상이 되어 하루하루가 아깝게 지나가고 있었다.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드는 딸을 기어이 깨워 내어 아침상 앞에 앉힌다.

엄마와 아버지의 아침상은 간소하다 못해 초라했다. 그것만으로도 사치인 것이 구십이 넘은 노인이 구십을 넘은 노인에게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밥상이었다. 그래도 엄마의 동선에서 그 좁은 아파트에 없는 것이 없었다. 최소한의 필요한 물건들이 적재적소에 구비되어 있었다


도저히 그 초라한 밥상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동네 슈퍼의 물가는 놀라울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서울 나들이도 할 겸 청량리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혼자서 갔다 오겠다는 나를 기어이 따라나서는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봄이 오는 길목이라 시장 안에는 다양한 산나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나물과 한국에서나 맛볼 수 있는 생미역등.. 생각 없이 주섬 주섬 퍼 담았다.

과일들이 늘어서 있는 청과물 시장 쪽으로 발길을 옮겨 보니, 여기저기 앙증맞게 생긴 토마토가 약방의 감초 마냥 없는 곳이 없었다.

일명 짭짤이라는 토마토인데 소금기가 간간이 베어 맛이 아주 좋은 신품종인 대저 토마토란다. 부산에 대저라는 특정 지역에서만 나오는 특산물이라는데 가격이 그다지 싸지는 않았다. 알이 작을수록 가격은 더 비싸지는 아이들이었다. 작은 한 바구니를 주섬 주섬 시장바구니에 담았다.


재래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인 칼국수집을 지나칠 수 없어 엄마와 나는 한 그릇에 4000 원하는 도깨비 칼국수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니말로는 엄청 유명한 집이라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이라고 했다.

가격은 물가에 비해 아주 저렴한 편이었지만, 맛은 12000원짜리 못지않게 시원하고 맛있었다. 게다가 냉장고 안에 쌓여 있는 수제비 반죽과 생칼국수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한국 사는 주부들이 참 부러웠다. 사실 반죽 하기 싫어서 수제비 끓이는 게 귀찮아 잘해 먹지 않는 음식인데 한국은 참 편한 것들이 많아 보였다.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가면 가장 해 보고 싶었던 재래시장 구경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소확행이라는 건가?

어린 시절, 마냥 엄마 손을 잡고 동네 시장에 이것저것 구경하며 떡고물이라도 하나 먹을까 싶어 목을 길게 내 빼고 쫄쫄 따라다니는 그런 모습..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의 엄마보다 더 나이들은 딸의 걸음걸이를 따라잡지 못해, 종종걸음으로 뒤쳐지는 노모의 안타까운 모습에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시장바구니 한가득 채워놓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와 함께 재래시장 구경하기는 나의 일상의 버킷리스트에서 한 칸이 지워지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아버지를 위한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초라하지는 않은 밥상으로...

나물 한 가지를 두고 몸에 좋은 토마토를 썰어놓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리라 다짐하는 아침의 기도가 되는 부모님을 위한 나의 아침밥상이 차려진다.

집안의 온기가 달라졌다.

노인의 향기가 희석되고 공기는 밝아지고 있었다.

나의 에너지는 두터운 약봉지보다도 더 강력했다.

아버지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딸과의 시간을 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엄마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자식이 뭐라고....

나는 어느새 십 대의 딸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어느새 나의 아버지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등을 돌리고 누워 자는 아버지. 듬성듬성 몇 가닥 남지 않은 아버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웅크리고 자는 아버지의 몸이 작고 볼품이 없다. 저 자리가 비워질 날도 얼마 남지 않으리라.

아버지가 잠이 들고 난 후, 조용히 엄마가 나를 부른다.

아버지가 죽고 나면 나를 따라 미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엄마가 조심스럽게 꺼내놓는다.

아버지의 죽음 후에 홀로 남겨질 엄마의 두려움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매몰차게 엄마의 말을 가로막았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그날이 오면 다시 내가 한국으로 나와 엄마와 함께 하겠다는 말로 안심을 시킨 후에야 엄마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늘 오후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감자탕을 끓일 준비를 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의 영정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