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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Sep 25. 2020

추석엔 송편보다 송이버섯

우리 좋은 마음만 해요.

내가 예닐곱 살 때, 추석이면 늘 먹던 음식이 있다. 사람들은 송편을 떠올릴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추석이면 늘 자연산 송이를 듬뿍 먹곤 했다.

전라북도 남원의 깊은 산골짜기에 살던 우리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게으른 양반으로 유명하던 분이었다. 얼마나 게으르셨냐면, 남들 모내기할 때 씨를 뿌리고, 남들 추수할 때 덜 익은 벼를 만지작거리며, 좀 과장하자면 첫서리가 내릴 즈음에 벼를 베던 그런 분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할아버지의 늦은 벼는 이상하게도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게으르던 우리 할아버지는 언니와 오빠의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아주 오래전엔 출생신고를 본적에서 해야 했으므로- 엄마는 시아버지 때문에 생일과 나이가 꼬여버린 자식이 둘이나 생겼고, 때문에 원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시아버지를 더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가 할아버지를 마냥 싫어할 수만은 없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송이버섯'때문이었다.

이미지출처 다음뉴스- 뉴시스 인제 송이버섯

추석이면 할아버지는 당신만이 아는 산속 어딘가 비밀의 곳에서 송이버섯을 가져오셨다. 명절이니 오래간만에 아버지를 도우러 시골에 내려간 아빠가 산에 같이 가자고 해도 절대 같이 가지 않고 그 장소를 가르쳐 주지도 않던 할아버지였다. 게으르기로 유명한 분이었어도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오는 날 만큼은 꼭 당신 손으로 귀한 송이버섯을 따와 대접하셨다.

할아버지가 가져오셨던 그 자연산 송이는 마흔이 넘은 내 코가 기억할 정도로 향이 기가 막혔다. 엄마는 자연산 송이버섯을 흐르는 물에 살짝 씻어 찢어서 주었는데 그걸 기름장에 톡 찍어 먹으면 입 안과 코 끝에서 송이 향기가 춤을 다.

추석이 될 무렵이면 우리 식구는 송편보다 할아버지가 가져오는 그 송이버섯을 먹을 기대에 늘 부풀었다. 가난한 집의 추석이었지만 고급진 송이 향기가 넘쳐나던 날이 있었다. 산골 집의 마루에서 온 가족이 모여 송이 회에, 송이 국을 끓여 뽀얀 보름달과 함께 던 그 저녁 밥상은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어 할아버지는 더 이상 그곳에서 송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시고는, 더 이상 송이를 가져오지 못하셨다. 이버섯 채취를 못하게 된 이후로는 우리도 명절에 시골에 내려오지 말라 하셨고 할아버지는 장터를 떠도시며 마음에 드는 할머니를 만나 연애도 하시고 용돈도 버시며 그야말로 마음대로 '놀다' 생을 마감하셨다. 

하지만 엄마의 증언으로는, 할아버지가 송이를 못 캐신 게 아니라 데이트 비용으로 송이를 팔기 시작하신 것 같다는 합리적 추측이 있었으나 진실을 알 길은 없었다. 난 만약 그 의심이 사실이라면, 우리 할아버지가 좀 더 멋지게 느껴진다. 왜냐면 그 연세에도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건데, 그 편이 우리 할아버지한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추석에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늘 할아버지의 자연산 송이버섯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에 대한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키가 크고 훤칠해서 시골에 온 외국인 같았다는 이야기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 고생만 옴 팡시킨 장본인이라 여즉까지 이쁘지가 않다는 말은 엄마가. 2년 차이의 남매를 연년생으로, 게다가 생일도 바꿔버렸다는 황당 무계한 이야기는 장본인들인 언니 오빠가. 그 송이 또 먹고 싶다는 거의 내가 하는 추석 루틴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 삼 남매가 거의 합창으로 이 말을 붙인다.


"맞아. 사람들은 추석 하면 송편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뭐 좀 있는 집 같이 자연산 송이버섯을 추석마다 즐겨먹었다고 말하면, 누구나 깜짝 놀라곤 했어. 그 비싼걸 추석마다 먹었냐고."


이후로 지금까지 송이도, 할아버지도 없지만 내 기억 속 추석은 특별할 것 없는 밥상 위에 올라 그 자태를 유난히도 뽐내던 럭셔리한 자연산 송 향기로 가득 차있다. 그건, 우리 할아버지만의 멋의 징표다.






사진출처

카카오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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