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지만 괜찮은 하루 6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사람이 싫어진다. 모두 아침에 서울로 갔다 밤에 서울에서 온다. 일산을 통과하는 지하철 안, 출퇴근 시간은 사람과 몸이 가장 밀착하는 시간이지만 사람에게서 마음이 가장 멀어지는 시간이다. 옆 남자 롱패딩 팔뚝 쪽에 코가 박힌 채 어서 서울이 오기를 기다릴 때면, 왜 우리는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내 코가 자기 패딩에 박힌 그 남자도 아마 같은 생각이겠지. 왜 다 서울에 있나? 사람을 존중하는 게 착한 마음만으로 가능한가? 핸드폰 들 공간도 겨우 확보해야 하는 곳에 서서 40분을 지나다 보면 앞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인간의 정수리에 미친 척 욕을 퍼붓고 싶어 진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이제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냐? 옘병.’
오전 8시 지하철은 또 그랬다. 이럴 땐 차라리 키가 작은 게 좋다. 정수리 냄새를 못 맡으니까. 내 옆에 선 여자는 안됐다. 내 냄새를 맡아야 하니까. 옆사람에 찡겨 있으니 안정감은 있다. 나 혼자 엎어질 일은 없겠다. 그렇게 탔다기 보자는 꽂혀 가고 있는데 두 할아버지가 발동 걸리고 말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데 오디오가 얼마나 짱짱한지 영상이 바로 앞에서 재생되는 느낌이 들었다.
“유치원 3법 그게 북한식 유치원을 만들자는 거야!” “맞아. 이름도 인민유치원이라잖아.” “그것뿐이야? 종부세 올려서 집 다 뺏으려는 수작이지.” 아. 할아버지, 목소리만 듣고 단정할 순 없지만, 이 시간에 지하철에 찡겨 일산에서 서울 가는 분이라면 9억 이상 다주택 때문에 골머리 앓을 일은 별로 없을 거 같은데. “고려연방제로 넘어가려는 거지.”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니 말 다했지.” 다른 칸으로 갈 수도 없다. 모두 조용했다. 대거리했다 기름 붓는 꼴 될까 싶어서인 듯했다. “우리나라 국민들, 다 멍청해가지고서는.” 할아버지는 외국분이셨나요?
1월엔 태극기 할아버지들이 지하철 투쟁을 벌이는 걸까? 또 걸렸다. 일장연설인데 이번엔 할머니가 상대다. 할머니는 듣기만 한다.“패스트트랙 한 번이면, 딸깍(여기서 효과음을 넣었다) 고려연방제 가는 거예요. 우리가 그걸 막아야지. 내가 이 나이에도 이승만 광장(그런 광장이 있나?)에 매일 나가는 게 그래서야. 이 나라 구해야지. 할머니도 나오셔야 해요.” 내 옆에 앉은 30대 중반 여자는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표정과 입모양을 봐선 아무래도 욕인거 같다.
감사 기도가 나왔다. “주여, 저 할아버지들이 우리 아부지가 아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들에게도 사정이 있겠지만, 난 이해할 자신이 없다. 아침 지하철에선 내가 잊고 있던 축복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