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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반짝 Nov 26. 2020

170417

201102

 생일이다. 

 난 엄마의 몸에서 나서 이렇게 잘 자라났는데, 엄마의 몸은 병이 들었다. 

 나를 떼어 엄마를 돌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 가족은 생일 당일에 다른 약속이 있어도 자정 전에 집에 들어와 꼭 함께 초를 분다. 오늘도 밖에 있다가 함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간신히 12시를 넘기지 않고 집에 도착했다. 대문 앞에서 벨을 눌렀더니 나와계시던 아빠가 문을 열어주셨다. 이제 입김이 나오지 않는 계절인데, 입에서 연기를 뱉어 내시길래 담배피지 마시라고 잔소리를 했다. 아빠는 담배를 뒤로 감추시고는 먼저 들어가라고 하셨다.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갈 때, 아빠는 엄마께 쓰레기 치우고 곧 들어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잠시 후 들어오신 아빠는 담배 태우시고 쓰레기도 정리하신 손을 씻으시고 가글도 하셨다. 다행히 엄마는 눈치채지 못 하셨다. 

 쓰레기 버리러 나오신 김에 몰래 담배를 태우시고 걸리지 않도록 뒷처리까지 하시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고등학생이 몰래 담배 피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대학교 때부터 담배를 접하신 아빠 인생에 몰래 담배를 피우셔야하는 순간이 있었을까. 그런날이 있을 줄 상상도 못 하셨겠지.

 아빠는 이 날 다양한 감정을 느끼셨을 것이다.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증세가 악화되어 입원을 하셨고 걱정되신 아빠는 속초에 다녀오셨다. 부리나케 돌아온 서울에는 여전히 아픈 엄마가 계셨고 아픈 가족에 대한 걱정도 끊기지 않고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내 생일 축하까지 해야한다니. 아빠가 담배를 태우는 시간은 그 뿌연 연기로 힘든 상황을 잠시 가리는 시간이다. 연기는 영원하지 않고 잠시 가려졌던 것들은 금방 다시 드러난다.

 해피 언해피 벌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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