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는 입시철 찹쌀떡만 보면 명치끝이 싸르르 아팠다. 힘들게 지나왔던 입시 관문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초여름만 되면 한국에서의 마지막 몇 달이 떠오르면서 명치끝이 아프다. 출근 전 아침밥을 먹다가 갑자기 받은 미팅 인바이트를 열던 순간 본능적으로 느껴지던 불안감, 그로부터 2시간 뒤 정리해고를 알려오는 전화기 너머 미국 본사 디렉터의 음성과 그 순간에 나를 감싸던 미팅룸의 공기, 그 뒤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순간에 동생과 나누던 대화, 삼십 대 초반 5년의 땀과 눈물을 2개의 박스에 담아 모두에게 안녕을 고하고 사무실을 나오던 그날 포스코 4거리에 불던 초여름날의 미풍, 그리고 싱가포르행 비행기에서 느꼈던 약간의 설렘과 엄청난 두려움...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떠남을 준비하던 그 무렵의 많은 것들은 수년이 지나고도 박제된 추억이 되어, 그날과 유사한 햇살과 바람이 찾아올 때마다소환되어 온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쓰고 신맛 가득했던 기억들이 점점 달콤 쌉싸름하게 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깊고 고혹한 향기가 나는 추억이 되었다는 것이다. 좀 쓰고 신맛 나던 커피가 적당량의 우유와 설탕으로 딱 좋은 향과 맛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정리해고 통보를 들은 순간부터 몇 주동안은, 나에게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인생이 나를 이렇게 배신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헌식적으로 일하고 많은 공을 세워 회사에 기여했고, 심지어 인사평가 최고점에 승진한지도 얼마 안됐는데... 신은 그런 내 노력과 땀을 보기는 한 것인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에게 온 것인지... 분노와 억울함 등이 뒤섞인 감정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한채 밤마다 혼자 숨죽여 통곡하고, 아침이면 아무 일 없었던 듯 출근하는척하며 집을 나서 하루종일 카페에 앉아 취업 사이트를 뒤지며 번민하는 하루를 보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쩌면 이것이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유일한 한국인 팀원이던 나와 대만의 팀원들까지 APAC팀 전원을 날려버린 대규모 정리해고로 인해서, 나는 퇴직금 외에 6개월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받게 되었다. 6개월 동안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 한꺼번에 들어온 것이다. 이 돈은 지난 5년동안 내가 생각만하고 실행해보지는 못하던 모험을 강행하게해준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결국 나는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끊었고, 한국에서의 일상을 정리하고 싱가포르에서의 정착을 위한 준비 리스트를 만들었다. 일단 부모님께는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않고 회사내 포지션 변경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할것 (죄송하긴 하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강력 반대하실 것이 뻔하므로 불편한 진실로 걱정하시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을것 같았다. ), 그리고 안전하지만 한편으로 굳이 나의 장기체류 자격여부를 확인하지 않을만한 숙박시설을 확보할것, 등등.
결심한지 두 달여 만에 나는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한국에서의 내 삶은 10개의 박스로 정리하여 귀중한 순위로 번호를 매겨두었다. 나중에 완전히 정착하면 언제든 우선순위로 데려올 수 있도록. 마치 다시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5년간 몸담은 회사생활을 통해 알게 된 몇몇 동료 겸 친구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가족도 없고, 안정된 체류를 보장하는 비자나, 정해진 일자리가 없는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은, 긍정과 용기만을 밑천으로 버텨내기에는 녹록지 않았다. 매달 들어가는 막대한 렌트비와 취업도 못하고 결국 빈손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내가 그렇게도 해보고 싶었던 싱가포르 생활을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기로 채우도록 만들었다. 다니던 회사를 통해서 해외 포지션으로 이동하는 기회를 얻어 이주하게 되는 경우거나, 이미 해외근무나 유학경험 등이 있어서 영어실력이 출중하거나 입증된 해외업무 경력이 있다면 구직이 훨씬 수월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아직 한국인이 많지 않고, 한국어 실력을 요하는 일자리가 있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그 어떤 경우도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직 한국에서의 업무 경력과 인터뷰 실력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고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는것은, 몸담았던 회사의 인사과 상무님께서 싱가포르로 구직하러 간다는 내 소식을 들으시고는, 한국지사에서 제공해주는 정리해고 혜택 중 한 가지인 취업 컨설팅 서비스를 싱가포르지사를 통해 싱가포르에서 받게 해 주신 것이다. 이 서비스를 통해서 나의 한국적인 이력서 포맷을 좀 더 글로벌 기업문화에 맞는 양식으로 다듬을 수 있었고, 현지 인터뷰 프로세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불어 또 다행스러웠던 것은 내가 한국에서 일했던 회사가 한국밖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글로벌 기업이었다는 것과, 내 전문분야가 현지법이나 문화에만 제한적으로 적용가능한 것이 아니라서 특정 업계나 특정국가를 넘어서서도 적용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6개월 동안 한 회 사와 한 달에 한번, 총 6-7차례의 인터뷰를 거쳐서 마침내 오퍼를 받고, 오퍼를 한 회사의 지원으로 제공되는 employment pass를 받아 싱가포르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렇다. 돌아보면, 8년 전에 겪은 정리해고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크나큰 사건이고 아픔이면서, 동시에 당시 회사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기도 했다. 내가 바라던 방식으로는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내가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큰 계기가 되었다. 인생이 무엇을 주건간에, 그걸 기회로 삼아 최선의 결과로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나의 몫임을 깨닫는 경험이었다. 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 이 글은 현재시점이 아니라 과거의 일을 틈틈히 정리해둔 일기나 노트를 바탕으로 정리한 글임을 참고 부탁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