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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서, 블랜더, 푸드 프로세서의 차이

한국에서는 매우 헷갈리는 개념

by 강상욱

블랜더류를 구매하다 보면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믹서기'라고 검색을 했는데 빵 반죽을 하는 반죽기가 보인다. 혹은 블랜더 하고 매우 비슷하게 생겨서 차이점이 없는 거 같은 기계인데 '푸드 프로세서'라고 파는 기물을 볼 때이다.

나의 경우에는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외국에서 온 프로모션 쉐프에게 기물을 마련해 주던 날이었다. 쉐프는 매우 humble 한 사람이었고, 내 영어 듣기 실력도 외국 쉐프가 원하는 기물을 실수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문제가 될 요소는 전혀 없었지만 해프닝이 생겼다. 문제는 ‘믹서(mixer)’라는 단어 하나였다.


쉐프: “I need a mixer.”

(나 믹서기가 필요해)
나: “You mean this one?”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나타나며]

(너 이거 말하는 거야?)
쉐프: “No, not a hand blender. A mixer.”

(아니야, 핸드 블랜더가 아니라 믹서기 말이야)
나: “Ah ha! You need more big one!" [과일도 통째로 갈 수 있는 업소용 블랜더를 들고 다시 등장]

(아! 너 더 큰 것을 원하는구나!)
쉐프: “NO. I want to make pasta dough. I need a mixer.”

(아니, 나 파스타 도우 만들고 싶어, 나는 믹서가 필요해)
나: “Wait, this one?”[푸드프로세서를 들고 마지막 카드처럼 내밀며]

(이거 이야기하는 거지?)
쉐프: “No. A mixer! M-I-X-E-R!”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니. 믹서, ㅁ ㅣ ㄱ ㅅ ㅓ !!!)


당시 나는 왜 저 사람이 자꾸 믹서를 찾으면서 이걸 아니라고 할까, 갸우뚱했다. 그런데 나중에 요리 원서를 보면서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혼란은 바로 ‘믹서기’라는 단어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말이다.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이상한 단어 '믹서기'??


한국에서는 ‘믹서기’ 하면 당연히 주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전기 칼날 달린 '블랜더'를 떠올린다. 과일을 갈고, 스무디를 만들고, 가끔은 갈비찜 양념으로 배와 마늘도 갈아버리는 그런 블랜더. 하지만 영어권에서 말하는 믹서(mixer)는 전혀 다른 녀석이다. 서양에서의 믹서는 바로 반죽기, 그러니까 스탠드 믹서나 핸드 믹서처럼 반죽을 섞어주는 베이커리에 작업에 필수적인 기계이다.

이렇게 단어가 아예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발음이 이상해서 식자재가 바뀌거나, 단어 선택이 어설퍼 생긴 에피소드는 많지만 개념 자체가 달라 생긴 해프닝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외국인 쉐프와의 해프닝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화면 캡처 2025-05-14 140902 믹서, 블랜더.png 차례대로 믹서(반죽기), 블랜더, 푸드프로세서. 해외에서도 블랜더와 푸드프로세서에 대한 질문글은 계속해서 올라온다.


그럼 왜 믹서기라는 표현이 블랜더를 대체하게 되었을까? 한국은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많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 당시 일본은 영어 단어를 음차 하거나 의미에 맞춰 새로 조합해 쓰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믹서도 그중의 하나여서 일본에서는 지금도 블랜더와 믹서를 모두 'ミキサー'(mikisā: 믹서)라고 표현한다. 그 믹서가 한국에 그대로 들어오면서 '믹서기' = 블랜더라는 개념이 굳었다. 특히 한국 음식의 특성상 블랜더는 활용할 곳이 많지만 반죽기는 활용할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먼저 보급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에 '블랜더'라는 정식 명칭이 들어왔지만, 이미 시장에선 '믹서기'라는 단어가 널리 퍼져 있었고, 이미 익숙해진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바꿔야 할 필요도 없었을 거고, 그래서 믹서라는 단어가 더더욱 혼용되지 않았나 싶다.

화면 캡처 2025-05-14 142634 일본 블랜더.png 구글에서 ミキサー(믹서)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한국과 동일하다



그럼 일본에서는 반죽기를 뭐라고 표현할까? 'スタンドミキサー'(sutando mikisā: 스탠드 믹서)라고 표현한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의 마켓에서도 스탠드 믹서라고 검색하면 반죽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언어라는 것이 요리뿐만이 아니라 조리도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다.




믹서, 블랜더, 푸드프로세서의 차이는 무엇일까?


믹서와 블랜더의 차이는 이제 대충 알겠다. 그런데 블랜더와 푸드프로세서의 차이는 무엇일까? 얼핏 보면 둘 다 기계 안에서 칼날이 빙글빙글 돌고 결국 식자재를 갈아내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둘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믹서(Mixer)
반죽용이다. 영어에서 믹서라고 하면, 스탠드 믹서나 핸드 믹서를 떠올린다. 휘핑, 반죽, 크림 치기 등 베이킹 중심의 작업에 특화되어 있다. 칼날이 아니라, 훅(hook), 휘퍼(whisk), 비터(beater) 같은 도구가 달려 있어서 재료를 ‘유연하게 섞는’ 데 최적화돼 있다. 반죽의 농도에 따라 3가지 종류의 고리를 바꿔가면서 섞는다. 빵 반죽처럼 단단한 덩어리를 하나로 뭉칠 때는 훅, 팬케이크 반죽처럼 주르륵 흐르는 반죽을 만들 때는 휘퍼, 비교적 단단한 상온에 녹인 버터등을 풀어야 할 때는 비터를 사용하는 식이다.

믹서기 훅.JPG 각각 순서대로 훅(hook), 휘퍼(whisk), 비터(beater)



블랜더(Blender)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믹서기’가 바로 이 친구다. 칼날이 바닥에 고속 회전하며, 재료를 잘게 부수고 갈아낸다. 스무디, 수프 만들기 등에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푸드 푸로세서보다 모터가 더 강력하여 입자가 매우 곱게 나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스무디 등이나 쉐이크를 만드는데 가장 많이 이용된다. 또 액체가 어느 정도 있어야 회전이 잘 된다는 특징이 있다. 토마토 등을 갈려고 블렌더에 넣고 갈면 칼날이 헛돌 때가 많은데 이건 블랜더 칼날의 특성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wet_blade_620x620.jpg 블랜더의 칼날은 바닥에서 약간 떠있기 때문에 수분이 없으면 재료가 잘 안 갈린다.




푸드 프로세서(Food Processor)
다지기 전문가다. 칼날이 넓고, 용기도 넓어 ‘부드럽게 갈아내는 블렌더’보다는 ‘잘게 잘라내는 주방칼’에 가깝다. 고기 다지기, 야채 다지기, 치즈, 심지어 파스타 등의 반죽까지도 가능하다.

정호영 수타우동.JPG 냉부에서도 푸드프로세서를 사용하여 반죽을 만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잘 사용하면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다.


서양 요리에서 사용하는 부드러운 퓨레나 수프 등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입자가 곱지 않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칼날 구조 차이 때문이다. 푸드 프로세서의 칼날은 평평하고 넓으며 바닥에 닿아 있다. 재료를 자르고 다지는 데는 강하지만, 부드럽게 ‘분해’하듯 갈아내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수분이 없어도 식자재를 잘 잘라낸다. 반면 블랜더는 칼날이 아래 깊숙이 들어가 있고, 회전하면서 재료를 회오리처럼 끌어들인다. 푸드 프로세서는 재료를 회오리처럼 끌어당기는 성질이 없기 때문에 재료가 날 가까이 머물지 못하고 거칠게 다듬어진다. 이처럼 비슷하게 생겼지만 나름 장단점이 명확하다.


1*FuTiIdQDHxHDOsiwYnt2xg.jpeg 푸드프로세서의 칼날은 바닥에 붙어 있기 때문에 수분이 없는 식재료도 잘 잘라낸다.




조금 복잡하니까 한 줄로 정리해 보자.


* 반죽기(Mixer): 재료를 섞는데 특화, 대부분의 반죽류에서 사용

* 블랜더(Blender): 수분이 많은 재료를 갈아내는데 특화, 매우 부드러운 결과물을 원할 때

* 푸드프로세서(Food prosessor): 수분이 적은 재료를 잘라내는데 특화, 약간 거친 결과물을 원할 때


본인이 집에서 홈 베이킹을 해야 한다. 그럼 반죽기는 필수이다. 만일 스무디나 건강 쉐이크 등을 만들어 먹는다. 그러면 블랜더를 구매해야 한다. 라구등의 고기나 채소를 많이 다져야 하는 서양 요리를 해야 한다. 그럼 푸드 프로세서를 구매하면 좋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대부분의 경우 블랜더를 푸드 프로세서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푸드 프로세서로 오래 갈면 블랜더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마늘등의 식자재를 블랜더로 갈 수도 있다. 두 제품 다 서로의 작업을 분명히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다. 단지 효율성과 결과물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초보 요리사들은 수분이 적은 식재료를 갈려고 헛도는 블렌더와 몇십 분 사투를 벌이다가 푸드 프로세서로 한순간에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허탈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두 가지 작업을 모두 포함하는 고급 제품들도 많이 나와 있으니 본인의 공간적 상황이나 선호하는 요리에 맞게 구입하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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