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난 지 십 년 하고도 몇 해
주소가 두 번 바뀌고
휴대폰 앞 번호가 바뀌었습니다
십 센티 뾰족구두는
일 센티 운동화로 바뀌었지요
거리에서 붕어빵 장사가 하나 둘 사라지고
동네에서 공터가 하나 둘 사라집니다
십 센티 뾰족구두에나 적합하던 블랙 투피스는
착착 접어 재활용 통에 넣어버렸어요 아울러
명품 가방은 당최 들고 갈 데가 없다는 사실도
알려드리죠 거기서 뭐하냐고 왜
돌아오지 않느냐고 걱정 많던 당신
저는, 여기, 잘 있습니다
큰 바다가 있는 작은 동네에서
작은 살림 작은 탄소발자국
작은 불안을 살죠
뻥 뚫린 퇴근길 어둠이 불쑥
적군처럼 진군해 오는 것 말고
달리 삶은 위태롭지 않고 저는
오래도록 슬프지 않았습니다 해 질 무렵
건널목에 넋 빠지게 서 있어도
영화관에 혼자 앉아 있어도 이제 더이상
슬프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당신의 의심처럼 혹시 제가
이상한 건 아닐까요 혹시
아픈 걸 모르는 건 아닐까요 오다가다
돌부리처럼 툭툭 심장을
만져 보긴 합니다만
만약 젊은 시절로 돌아갈수 있다면 무얼 하고 싶으냐? 나이가 들면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그런 일은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일이다. 젊은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무엇이 그리 괴롭고도 슬펐던지.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 하는 일마다 마음에 차지 않았다. 나는 대체 무엇이 되려고 이러나?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방황하나? 젊은 날의 추억은 8할이 괴로움이다.
그런 나도 언제부턴가 괴로움 없이 삶이 살아졌다. 아주 괴로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고만고만한 괴로움, 납득할만한 괴로움이 있을 뿐 , 큰 괴로움 없이 삶이 살아졌다. 그러나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어려운 시간들을 참고 견디며 이루고 싶은 것을 모두 이뤄 괴로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온갖 시행과 착오를 겪으면서 바라는 것이 작아지고 꿈이 작아지고 절망도 작아지면서 얻은 평온이란 것을. 그래서 나는 또 가끔 나의 평화를 의심한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나? 이렇게 괴로움 없어도 되나? 혹시 무통증 환자처럼 있는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