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로 돌아왔다. 거의 1년 만이다. 괜히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작년에 인생 최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기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나? 그렇게 힘들었나? 싶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뜬금없지만 뭐든 일단 버티자, 그 터널의 마지막까지 꼭 버텨보자. 나중에 터널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얼마나 어두웠는지도 기억도 잘 안 난다. 역시.. 버티는 게 최고다)
나는 올해 봄에 발령을 받아 완전 다른 공간에서 완전 다른 업무를 한다. 이곳에도 상식이 있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어른들과 함께라 마음이 편하다. 그전에는 쓰러뜨리고 밀어내고 그걸로 희열과 자존감을 채우는 결핍된 어른들이라 힘들었지만..
그리고, 나는 나의 정원을 찾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 안에 정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안에 이미 정원은 꾸려져 있었고 꽃도 피고 있었다. 하지만 울타리도 없고 관리가 안되어 잡초가 무성했다. 아무나 들어와 아무렇게나 헤집고 밟아놓았고, 비포장 도로로 꽃밭과 길이 구분이 안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껏 울타리도 못해놓고 내 정원을 밟고 파헤쳐도 말도 못 하고, 잡초가 비집고 들어와 무성해져도 나는 그럴만한 인간이지.. 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존감이 낮다는 건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나는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의 나에 갇혀있었다. 그래서 정원을 발견하지도, 가꾸지도 못하고 그저 살아내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있었다. 나의 청소년기와 20대 초반까지 10년 가까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들었던 말이 주로 부정적인 단어였다. 성인이 되어 그 분과 화해했고, 그분은 나를 너무 사랑해서 자극해서라도 깨닫게 하려고 그런 말들을 쏟아냈다고 했다. 이제야 의도는 이해하지만 나는 그분이 10년 동안 꾸준히 나에게 한 부정의 말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나 스스로한테 직접 부정의 말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상황도 인지를 못했다. 나 스스로 나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긍정의 말로 바꾸면 나도 괜찮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는 정말 내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난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소리칠 때도 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나는 지나치게 스스로를 방어하다 보니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난 못해.. 난 못생겼어.. 난 못할 거야.. 나는 바보야..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최대한 못난 나를 탓하면서 겉으로는 나의 약함이 들킬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착한 척, 모르는 척, 쭈그려 살았다. 그래서 나는 매일이 괴로웠다. 내일 죽는다 해도 생에 미련이 없었다. 그래서 욕심도 부리지 않으려고 나를 꺾었다. 누가 잘되어도 그들은 잘났으니까 당연한 일이고, 내가 죽을 쑤고 있으면 나는 그럴만한 인간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속 깊은 어딘가에는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왜 이러지 하면서 괴로웠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생각 없이 살고 싶은데 내 안에서 나를 지키려는 말이 늘 불쑥불쑥 올라와 울컥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아끼면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나를 희생하면서 상황을 좋게 만들고, 떠안아가면서 상대방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것에 몰두하며, 나를 사랑해 주길 이뻐해 주길 선택했다. 그건 정말 상대방이 좋은 사람들일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나의 이런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만나 맘고생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황폐화된 내 정원에 울타리도 세우고 길도 만들고 잡초도 뽑아주고 비료도 뿌려주며 풍성해질 꽃밭과 정돈될 정원을 그리며 마음에 위로를 찾고 있다. 내 속의 어린아이도 이제 작별하려 한다. 어쩌면 그 어린아이의 불안 덕분에 지금껏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20여 년간 나의 조종칸에 앉아있었던 불안한 어린아이가 사라진다는 것만으로도 어색하고 두렵지만, 그래도 잘 놓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마음 속 정원을 돌보기 위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정원을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