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댄스에서 슬로우조깅으로
습관은 다른 습관으로, 중독은 다른 중독으로 대체해야 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슬로우조깅에 입문하면서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힘겨워하면서도 즐기는 편이다. 특히나 잘하는 것과 별개로 춤을 배우고 추는 것을 좋아한다. 방송댄스, 에어로빅, 줌바, 스포츠댄스, 밸리댄스, 스윙댄스 (린디합 & 웨스트 코스트 스윙) 등등, 춤에 딱히 재능이 있지도, 여건상 오래 하지도 못하면서 조금씩 기웃거렸다. 다양하게 거친 춤 중 슬로우조깅을 알게 되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배운 것이 스윙댄스였다.
스윙댄스를 배우는 내내 즐거웠다. 음악도 좋았고, 다양한 파트너와 약 3분, 한 곡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춤을 추는 소셜 시간(*수업 후에 갖는 무도회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교를 위한 댄스라는 점에서 social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또한 즐거웠다. 누구랑 얘기하는지에 따라 대화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달라지듯이, 파트너에 따라 그 3분은 매우 다른 경험을 주었다. 한마디로 나는 스윙댄스에 푹 빠졌다.
그러다가, 겨우 걸음마를 떼고 졸업공연 (*수업 한 분기가 끝나면 그 반의 수강생들끼리 작은 공연을 준비해서 새로운 분기가 시작될 때쯤 졸업공연을 한다) 준비를 열심히 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에서도,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스텝을 복기하고 작은 스텝으로 연습을 했다. 과유불급이라고, 그러다가 졸업 공연 직전의 리허설에서 종아리 파열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종아리 파열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 가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갑자기 퍽, 종아리에 공을 맞기라도 한 듯 와르르 몸이 무너져 내렸다. 하필 파열이 난 순간은 파트너와 손을 잡고 양옆으로 발을 차는 격동적인 동작이라 딱 멈춰 설 수도 없었다. (격동적이라 이 순간 다리에 무리가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닥에 주저앉아 쥐가 난 줄 알고 계속 주물러댔으나 나아질 기미가 없어, 결국 졸업 공연은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동기들을 응원했다.
그날은 하필 토요일이었고, 주말 동안 쥐가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며 반신욕도 해보고 열심히 마사지도 해줬다. 이것이 종아리 파열에 최악의 대처법인 것도 몰랐다. 일요일이 되어서야 쥐가 아니라면 뭘까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고 파열일 수 있다는 생각이 겨우 들었다.
월요일, 겨우 병원에 갔더니 파열이 맞다는 사실과 피가 제법 나와 아직 근육에 흡수가 안된 것을 발견했다. 초음파로 본, 시커멓게 모니터에 뜬 파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결과가 놀라웠다. 내가, 내가 파열이라니! 춤을 출 때가 아니면 평소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살면서 크게 다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반깁스와 목발을 짚고 병원에서 나오며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싶었다. 그 뒤로 약 반년이 흘렀다. 생각보다 피가 근육에 흡수되는데 오래 걸렸고, 겨우 반깁스를 뺐어도 나는 여전히 미세하게 절뚝거렸다.
다치면서 끝난 스윙댄스였지만, 그립고 그리워서 못 나간 시간 동안 유튜브로 끊임없이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리가 좀 나아지자 결국 또다시 스윙댄스 동호회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이제 가벼운 운동은 해도 된다고 했지만, 제법 오래 쉬었던 종아리 근육 깊은 곳이 가끔 시큰거렸다. 동호회에서는 다리가 불편한 것을 숨기려고 애썼지만, 한번 파열을 겪고 나자 몸을 사리게 되어 전만큼 즐겁게 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리 자체보다도 심리적인 부담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수시로 쉬고 주물러주며 춤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스윙 댄스를 추다가, 다리에 힘을 키우고 복귀하자 싶어 그만두었다. 마침 일정도 빡빡해져서 주말 반나절은 투자하게 되는 스윙 댄스는 잠시 참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싶었다. 헬스도 해봤지만, GX만 열심히 했지, 러닝머신, 사이클, 웨이트는 전부 재미없었다. 누구한테는 흥미롭고 재밌는 헬스가 내게는 지루하고 기력만 빼앗는 활동 같았다. 스윙을 할 때부터도 100세 스윙을 목표로 했던 터라, 나이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을 발견하고 싶었다. 요가도 시도해 봤지만 스트레칭으로서는 좋을지언정, 내가 원하는 에너지 발산적 움직임이 부족했다. 전애인이라도 그리워하듯, 여전히 유튜브로 스윙댄스를 찾아보고, 동호회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이럴 바에 건강이고 시간이 없고를 떠나 그냥 돌아가야 하나 싶기까지 했다. 늘 굶주려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 일상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하면서 유튜브에서 찾아보던 중 슬로우조깅에 대한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일평생 한 번도 오래, 제대로 달려보지 않은 나로서는 조깅은 너무나 먼 일처럼 느껴졌지만 슬로우조깅은 앞에 슬로우가 붙은 것만으로도 가능할 것 같았다. 희망의 불씨가 지펴졌다.
그때만 해도 슬로우조깅이 조금씩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었지만, 슬로우조깅을 다루는 영상이 지금만큼 수없이 제작되고 수많은 이가 홍보하던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건강을 다루는 방송에 슬로우조깅이 방영되면서 주목을 막 받기 시작한 것 같았다. 짧은 클립으로 정리된 슬로우조깅에 대한 설명을 보고, OTT로 슬로우조깅에 대해 방송된 내용을 시청했다. 쉽고, 단순하고, 나이에 상관없고, 꾸준히 조금씩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같은 방송을 다시 보고, 유튜브에서 클립을 계속 돌려보고, 조금씩 방 안에서 따라 해 보며 이건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느리게, 내 페이스에 맞출 수 있는 조깅이라면 나도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그 접근성이야말로 나를 매혹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제 스윙댄스가 아닌, 슬로우조깅에 관한 영상을 끊임없이 찾아보고 다시 보고 있다는 걸. 이제는 새로운 운동에 빠져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