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변화
지난 글에서는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지 다루었다. 그렇다면 어떤 증거들이 나로 하여금 성장을 믿게 했는가?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슬로우조깅으로 인해 복합적인 성장과 변화를 느끼지만, 대표적으로 체감하는 것 4가지가 있다.
1. 사라진 종아리 근육 통증
슬로우조깅을 시작하고 한 달이 될까, 말까 한 시점이었다. 스윙댄스 때 겪었던 종아리 파열은 초음파로 봤을 때 진작 나았지만, 여전히 종아리 근육 깊숙한 곳에서 시큰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혹시 또 다칠까 봐 무서웠다.
무리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다른 사람의 눈이고 뭐고 그냥 내 페이스대로 느리게 달렸다. 그러다 슬로우조깅을 시작하고 한 달도 안 지난 어느 날, 왼쪽 다리에서 느껴지던 욱신거리는 통증이 갑자기 싹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파열 후 2년가량 남아있던 그 통증이 홀연히 없어진 것이다.
당연히 평상시의 걸음걸이도 힘차고 빠르고 가벼워졌다. 또 다칠까 봐, 그리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무서워 횡단보도에서 서둘러 걷는 것도 두려웠는데, 이젠 토도독 가볍게 달릴 수도 있다. (파바박, 전속력으로 뛰지는 않는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면 속근육이 욱신거려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젠 계단도 아프지 않게 내려갈 수 있다.
근육이 붙는다는 게 이런 걸까,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 슬로우조깅으로 몸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2. 덜 쉬고 더 오래 달린다
달리기가 멀게만 느껴진 이유는 속도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오래 뛸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1분 뛰고 호흡을 고르는데 그 몇 배의 시간을 들이고, 겨우 그 1분 달리고 몸이 축축 처지는 감각이 싫었다. 진이 빠진다고나 할까?
슬로우조깅을 시작하면서 일단 1분의 벽이 무너졌다. 그뿐이랴, 1분을 달려도 입안에서 피맛도 올라오지 않고, 숨도 잘 쉬어졌다. 달리는 방식을 바꿨더니 1분 넘게 달릴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처음에는 1분 30초 정도 슬로우조깅을 하고 1분 걷는 인터벌 방식을 택했다. 종아리 근육이 금방 뭉치기도 하고, 하지정맥순환 문제도 겪고 있어 혹시라도 또 파열이 날까 두려웠다. 이제는 무리해서 몸을 망가뜨리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해줬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3분, 5분, 10분, 30분, 45분 달리는 걸로 점차 늘려갔다. 여전히 다리가 뭉치거나 많이 부은 날은 자중하느라 달리다가 몇 걸음 걷고 다시 달린다. 몸이 괜찮다고 할 때는 그냥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린다.
실제로 1분도 못 달리던 나는 그보단 훨씬 오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달리기는 n분 지속적으로 달려야만 하는 행위라는 강박이 사라진 것. 그것이 사라진 것 자체만으로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3. 케이던스, 페이스 등 눈에 보이는 수치
시계로 볼 수 있는 달리기 지속 시간 말고도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바로 평균 페이스와 케이던스다. 평균 페이스는 1km를 가는데 몇 분 걸리는지, 즉 속도다. 케이던스는 1분에 몇 번 발이 지면에 닿았는지를 보여준다.
리드미컬하고 가볍게 잘 달린 것 같으면 보통 페이스도 괜찮고 케이던스도 안정적이다. 일반 달리기보다 속도가 훨씬 느린 슬로우조깅이라 페이스는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케이던스를 보면 느리지만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도 빨라지고 무엇보다 속도가 안정적인 날은 괜히 뿌듯하다. (슬로우조깅은 리듬이 중요하다.)
내게 더 어려운 건 케이던스였다. 그래서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일단 속도만 신경 썼다. 꾸준히 달리며 자세를 잡다 보니 어느 날 케이던스는 금방 나아졌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치. 이 숫자들이 내 몸이 단련되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 매일 뛰는, 꾸준한 나
나는 평소 위클리 플래너를 사용하고 있다. 매주 일정을 적어 넣는데, 주 7일 슬로우조깅을 적어둔다. 매일 아주 조금이라도 달리기 위한 조치다. 슬로우조깅 후에는 하루에 몇 킬로미터 달렸는지, 또는 몇 분 달렸는지 적어둔다.
슬로우조깅은 1분씩 해도 되는 운동이니까 사실 한 번에 얼마나 오래, 빨리 달렸는지가 내게 중요하진 않다. 내가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고 있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그 기분이 좋을 뿐.
이런 기록들이, 나는 바쁘든 안 바쁘든 지속적으로 달리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나는 매일 슬로우조깅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 자체가 내게는 성장과 변화다.
당연히 당장 체감하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치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가끔씩, 내가 나아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는 이렇게 몸으로 느껴지고 눈으로 보이는 미세한 증거들이 성장에 대한 믿음을 견고히 해줄 수 있다.
누군가에는 별 거 아닐지도 모르는 이런 작은 변화들이 내게는 크나큰 만족감을 안겨준다.
내일도 (천천히!) 뛰어야지, 기쁘게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