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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bk Apr 26. 2024

강서경: 마치 MARCH

Suki Seokyeong Kang : MARCH

 이번에는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강서경 작가님의 《마치 MARCH》를 감상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정답이 아닌 저의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저의 감상이 여러분만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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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05> 2023-2024, color on slik mounted on Korean hanji paper, thread, wood frame

 시간이라는 개념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깊이 이해하고자 하면 낯설어진다.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연속되는 것 같은 두 장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서사성을 느낀다. 예를 들어, 시계를 볼 때 12시 1분 1초를 본다면 이후에 12시 1분 2초가 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본 시계의 두 장면은 서로 독립된 상황이다. 즉, 다른 프레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개의 독립된 프레임을 버릇적으로 연관시킨다. 그리고 연관을 통해 시간이 전제된 서사성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 시간이란 개념을 만드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간은 시간을 자연스럽게 전제한다. 그래야만 모든 인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파편적인 장면들은 인과적으로 결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시간은 인식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전시명 《마치 MARCH》는 행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현재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도래할 또 다른 현재로의 행진. 단호하면서도 고유한 리듬감을 가지는 강서경 작가의 행진을 전시에서 느낄 수 있다. 작가의 <Jeong #05>는 독립된 여러 프레임들이 나열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프레임들은 각각이 다른 색을 가지며 같은 공간 안에 혼재되어 있지만, 감상자가 이것을 바라보는 순간 서사성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서사들은 상하좌우 어떤 방향으로든지, 한 칸씩 두 칸씩 어떤 길이로든지 가능하다. 이때 감상자는 고유한 자신만의 리듬, 시간의 창조를 느낄 수 있다.


<Jeong 55 x 40 #09> 2023-2024, mixed media on silk mounted on Korean hanji paper, thread, wood frame

 우리가 시간성을 잘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예시는 음악이다. 서사들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음악은 시간의 예술로 표현되곤 한다. 그렇다면, 음악을 시각화한다면 가장 먼저 어떤 걸 떠올리기 쉬울까? 아마도 악보가 가장 먼저 떠오르리라 생각한다. 악보의 대표적인 이미지로는 서양의 오선보를 먼저 떠올리기 쉬우나, 과거에는  한국의 전통 악보인 정간보 또한 종종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배웠던 단소 악보처럼 말이다. 정간보는 사각형의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악보를 읽는 연주자는 각각의 다른 프레임 속 기호들을 연관시켜 서사성을 부여한다. 인간은 이때에도 역시 시간의 창조자이다.


  강서경 작가의 작품들 또한 악보처럼 배치되어 있다. 비율과 배치의 조화가 작품 내적으로도 작품 외적으로도 펼쳐져있다. 작가의 <Jeong 55 x 40 #09>에는 작품 내적으로 비율의 조화가 느껴진다. 요동치는듯한 프레임들은 악보에 의해 춤춰지는 듯한 생동감을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또한 작가의 작품들은 프레임의 내용뿐만 아니라 프레임 그 자체를 부각해 순수한 시간성 그 자체를 작품 속에 담으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선들로 구획이 규정되지 않는다면, 여러 색들이 혼재된 평평한 면은 말 그대로 카오스이다. 인간이 세상을 인과적으로 규정함을 통해 인식하듯이, 혼란스러운 색면은 프레임을 통해 서사성을 가지게 된다.  


<Mora 55 x 40 - Nuha #2> 2014-2023, gouche, dust, acrylic panel, silk mounted on paper, silver...

 그렇다면 인간이 무언가를 인식하기 이전의 순수한 세계는 무엇일까? 우리가 인식을 하기 위해선 무언가를 규정할 재료들이 먼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들은 시간의 질료들, 즉 카오스적인 시간이다. 카오스적 시간에는 모든 지나간 과거의 기억들이 혼재되어 있다. 인간은 이 시간의 질료들을 한 점으로 응집시켜 기억과 개념을 만들고, 이것을 통해 현재를 규정함으로써 무언가를 인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인과론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자유롭지만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 내던져져 있다.


 작가의 <Mora 55 x 40 - Nuha #15> 연작에서 감상자는 카오스적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속에는 틀 안에 겹겹의 혼란스러운 페인팅들이 쌓여있다. 이 페인팅들은 깊이도, 두께도, 위치도 통일 감 없이 작품 속에 제각각 산재해 있다. 하나의 페인팅을 온전히 시선에 담고자 시도하면, 다른 페인팅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져 그 시도가 무력해진다. 그래서 감상자는 혼란스러운 페인팅'들'만을 느낄 수 있다. 페인팅들의 형태는 말 그대로 혼란이지만, 여기서의 혼란은 무의미한 혼란이 아니다. 작품 속의 혼란함은 무의미하지 않을 역량이 내재된 혼란, 서사의 재료들 그 자체로서의 속성을 나타내준다. 작가의 연작들을 통하여 우리는 작가가 생각하는 세계 그 자체의 모습은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작가는 시간성에 관한 여러 고찰들을 시각화하여 감상자에게 전해준다.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전시 《마치 MARCH》를 통해 여러 가지 사유를 행진하듯이 애매한 시간의 개념들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Jeong #03> 2023-2024, color on silk mounted on korean hanji paper, thread, wood frame 외 다수

 강서경 작가님의《마치 MARCH》를 통해 저는 많은 사색을 할 수 있었어요! 아름다운 동양적인 양식과 함께 느껴지는 신비로움이 인상 깊었어요. 혼란스럽고 분주한 현대사회에서 정갈함은 점점 희소해지는 가치 같아요. 특히 시간의 정갈함을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지루함을 피하고자 눈에 띄는 것에 시간을 옮겨버린다던지, 처리해야 될 일이 너무 많이 쌓여 시간을 느낄 새도 없이 보내버리는 것처럼요. 시간이란것을 너무 소비해야될 무언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작가님의 작업들을 천천히 둘러보면 잊고 있었던 자신만의 리듬감을 돌이켜볼수 있는것같아요. 여러분들은 강서경 작가님의 《마치 MARCH》를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함께 나누어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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