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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로 풀어보자

by Rumierumie

우와, 바쁘다.

카나리 워프 (Canary Wharf)의 유리로 된 고층 빌딩 사이, 하얀 셔츠를 입은 ‘뱅크맨’들 틈을 지나 사무실로 향하는 출근길이다. 출근 시간에 여의도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비슷한 풍경일까? 번쩍거리는 도시와 반대로, 나는 수수한 얼굴로 지하철을 내려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천국…아니 출퇴근의 계단

지하철역 출구에 커다란 천창이 있어서, 약간 천국의 계단이 생각나는 풍경인데 - 사람들 얼굴은 그다지 천국에 가는 표정은 아니라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운동화를 신었지만, 티셔츠 대신 셔츠를 입고, 회사 랩탑을 등에 지고 출근길에 오르면…손에는 고소한 커피 하나라도 들려줘야 씩씩함이 더해진다.

익숙해져야 할 것들과 익숙해지기 싫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충돌한다.


기회와 리스크를 동시에 안고 선택한 변화.

런던에서 10년 넘게 살았는데, 까짓 거 어디 한 번 어떻게 되나 볼까?


덥석 시작한 일이 올해 내내 나를 끌고 가고 있다.

직장을 옮기고, 인더스트리를 바꾸고, 업무를 ‘따라가는 사람’에서 ‘이끄는 사람’으로 옮겨가는 기회들이 이어지고 있다.

좋은가? 어려운가? 그런 감정을 충분히 느낄 겨를도 없이, 그저 매일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있다.


새로운 팀, 새로운 도전, 새로운 기대.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지금도 덜거덕거리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편안한 선택만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얼마나 경계를 밀어붙여야 추락하는지 실험해보고 싶다.


새로운 환경으로 옮길 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억지로 틀에 맞춰 행동하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나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나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마주하기로 했다.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 그냥 해보는거다.

환경 적응은 여전히 숙제ㅠ

하이브리드 모델이라는 이름 아래, 일주일의 반은 회사에서, 반은 홈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다. 같은 업무라도 배경이 바뀌면 집중도가 달라지고, 업무 속도도 흐트러진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시스템도 리셋되니까, 적응하느라 고생 중이다.


일이 잘 풀려도, 잘 안 풀려도 뭔가 묘하게 불편한 기분이 남곤 했다.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 까칠하지?’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불규칙적으로 일기장에 감정만 켜켜이 쌓이고, 생각은 정리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환경과 시스템에 적응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였나 보다.


해소할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요즘은 아침 일찍 일어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른 아침, 벌써 출근한 하얀 셔츠 부대 사이에 오도카니 앉아서 글을 쓴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것처럼, 한동안 쌓였던 글도 세상에 내보내자 - 그래서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다.


닥치는 대로 상황을 맞닥뜨리다 보니 어느새 6월이다. 지난 절반은 어땠지? 남은 절반은 어떻게 보낼까?

내년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그다음은?

아직 답은 없다.

그래도 이 질문들을 놓치지 않았다는 걸 보면… 잘 가고 있는 거겠지?



이 글을 읽는 그대, 잘 지냈나요?

지난 절반의 시간과, 앞으로 지내야 할 나머지 절반의 2025. 그대만의 속도로 보내길 바라며, 쑥스럽지만 오랜만에 인사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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