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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Oct 19. 2024

27년을 뛰어넘어

Don't look back in anger by Oasis

 한창 영어수업을 하던 중 교과서에 집 전화가 등장했다. 대부분 개인 휴대폰만 사용하는 요즘, '전화기'는 아이들에게 낯설 터. 버튼이 커다란 꼬불꼬불 전화기부터 무선 인터넷 전화기까지 골고루 사용해 본 나는 아이들에게 집 전화와 당시의 전화 문화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전화기가 있었어." "휴대폰 말고요?" "그래.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쓰는 인터폰 있지? 이렇게 생긴 전화기가 집에 한 대씩 있었어. 친구랑 놀고 싶으면 친구 집에 전화해서, 친구 부모님께 00이 있나요? 하고 여쭤봐야 했지."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선생님, 저도 엄마한테서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요!" 나에겐 당연했던 것을 도시전설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보니 귀여우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나이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건 아니잖아?! 수십 살도 아니고 1n살밖에(?) 안 나는데, 너희는 전화기를 본 적도 없다니! 이런 대화를 할 때마다 세대 차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 단단한 벽이 우뚝 서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탕후루 춤을 추고 집에서 틱톡 영상을 찍는 세대라는 걸 생각해 보면 사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세상은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고,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변해가니까 말이다. 내 눈에 콩알만큼 작아 보이는 이 8세~13세의 아이들도 이제 더 이상 소꿉놀이는 하지 않는다. 나는 필통에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사진을 붙이지 않고, 나보다 10년 정도 더 산 사람들은 인터넷 밈을 보며 낄낄 웃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조용한 저녁시간을 더 즐기는 것 같다. 더 나이가 들면 TV와 넷플릭스보다는 꽃, 나무,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길 원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끔 왜 저런 희한한 걸 좋아할까? 궁금하고, 저게 저렇게 재밌을까? 싶다. 아마 어르신들은 내 또래 젊은이들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시겠지.


 공연을 보러 갈 때도 가끔 그런 생각에 빠졌다. 내가 가는 콘서트의 관객층은 주로 20대~30대. 놀랍도록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만 모인 공연장에 서 있다 보면 문득 10년 후, 20년 후에는 내가 누구의 공연장에 서 있을지 궁금해졌다. 언제는 부모님과 함께 간 가수 이문세 씨의 콘서트에서 수많은 부모님 뻘 어른들을 보고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보편적으로 10대들은 최신 아이돌 콘서트에 가고, 나는 밴드나 페스티벌 공연을, 어른들은 좀 더 구수한 공연을 즐기시는 듯하다. 이렇게 나이대별로 즐기는 콘텐츠와 음악 취향이 다르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나와 아이들 사이에 있는 벽처럼 10대, 20대, 30대, 40대... 나이대별로도 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가수 임영웅 씨의 콘서트장 밖에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딸들이, 아이돌 콘서트장 밖에는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님들이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중 2023년에 '노엘 갤러거의 하이 플라잉 버즈(이하 하플버)'의 내한 콘서트를 가게 됐다. 하플버의 우두머리인 '노엘 갤러거'는 90년대를 휩쓸었던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멤버다. 2009년에 오아시스가 해체한 후 형 노엘은 노엘대로 동생 리암은 리암대로 각자의 밴드를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고, 노엘이 이끄는 하플버는 한국에서도 종종 공연을 해 왔다. 하플버 공연이긴 하지만 오아시스의 옛날 노래도 불러준다는 얘기에 나는 겨우겨우(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후 취소표를 겨우 구함) 티켓팅을 성공하고 공연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오아시스는 길게 설명하기 민망할 정도로 유명한 밴드긴 하지만 나는 2013년쯤 대학을 다닐 때 그들의 노래를 처음 접했고, 덕분에 브릿팝이라는 장르를 처음 알게 됐으며 잘 기억도 안 나는 90년대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왠지 예의 없는 듯한 느낌의 특이한 리암 목소리와 그에 비해 걸쭉한 노엘의 보컬, 막 소리 지르고 무서워 보이는(?) 락보다는 좀 더 차분한 느낌의 락 멜로디, 쨍한 색깔로 이루어져 있었던 당시의 '요즘 노래'들과는 달리 빛바랜 종이에 채도 낮은 악기소리를 얹은 듯한 느낌의 노래들. 그리고 귀엽게도 탬버린 소리가 들어있는 곡이 많다는 점이 나를 매혹했다. 나는 휴대폰으로, CD로, LP로 그들의 노래를 닳고 닳도록 들으며 언젠가는 콘서트장에서 라이브로 들으리라 생각하며 잠들곤 했다.


 어떻게 보면 10년을 기다린 공연 당일, 하이 플라잉 버즈의 노래들이 줄이어 나왔고 공연이 후반부로 접어들자 오아시스 노래들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커지는 환호 속에서 드디어 마지막 곡, <Don't look back in anger>가 흘러나왔다. 1996년에 발매된 이 곡은 다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것 같은 가사이지만 '화내며 뒤돌아보지 말라'는 꽤나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아시스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또 많이 불리는 노래라 아마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들이 이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딴 딴 딴 딴, 피아노 소리와 함께 곡이 시작되자 와-하고 귀가 따가울 정도의 커다란 함성소리가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Slip inside behind of your eyes...' 듣고 또 들었던 노래라 가사를 부러 떠올리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나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관객들 모두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 앞으로 다가온 대망의 하이라이트. 보컬 노엘은 "너희가 불러!" 하며 일찌감치 뒤로 한 발짝 물러나 관객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었고, 무대를 향하던 조명은 방향을 바꿔 객석을 비췄다. 그리고 시작된 바로 그 부분. 'And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모두가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나도 열심히 불렀다. 이렇게 관객들이 하나 되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매번 멋지고 항상 벅차다. 그날은 눈물도 막 나왔다. 멀리까지 오기 너무 힘들었는데 내가 이 순간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해진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잠시 돌렸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 우리 아빠와 비슷한 나이대이신 분이 눈을 꽉 감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가에 진 주름, 집중하느라 찌푸린 얼굴과 음악을 느끼는 듯 천천히 흔들리는 몸이 보였다. 이 노래가 발매되었던 1996년에 그분은 20대나 30대이셨을 것이다. 2023년의 나처럼 말이다. 오아시스 노래를 들은 지 고작 10년밖에 안 된 나도 이렇게 눈물이 나고 있는 추억 없는 추억 다 떠오르는데, 더 많은 세월을 함께한 그분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열심히 노래를 부르셨을까. 고개를 반대로 돌리니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학생이 있었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저 친구는 앞으로 이 노래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까. 


 만약 우리가 공연장 밖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면 서로 꼰대다, 역시 엠지는 다르다며 늘 그렇듯 '세대차이'라는 벽 안에 서로를 가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하나의 노래를 부르며 같은 감동을 공유했던 그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무너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우리는 오아시스 얘기를 한다면 밤을 꼴딱 새울 수도 있을 것이다. 27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을 좁히는 데에는 노래 한 곡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니! 이런 걸 보면 친구가 되는 데에 꼭 거창한 말이나 행동이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이 노래를 다시 한번 불렀다. 마침 올여름 오아시스가 15년 만에 재결합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12살인 너희들이 열심히 이 노래를 불러 두면, 나중에 70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비록 너희가 집 전화는 써본 적 없더라도 말이야. 우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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