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스미스의 아이로봇을 곁들인
영화 「아이로봇」은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아시모프가 지은 로봇공학의 3원칙이 나온다.
0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02.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03.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위 3원칙은 논리 구조상 완벽하여, 로봇이 절대 인간을 공격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결국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려, 로봇이 인간을 공격한다.
원칙을 정하는 것은 중요하고 표면적으로는 완벽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을 마주해야 안다.
아시모프가 세운 원칙은 연역법이라고 볼 수 있다. 가설과 그에 따른 전제가 완벽하여 논리적으로는 완벽하다. 하지만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학교폭력 담당 교사를 위한 3원칙은 직접 경험을 토대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귀납법에 가깝다. 원칙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문장이다. 그럼에도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동료 교사들을 위해서, 교사들이 갈려나가는 지금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관점에서 제안한다.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학교폭력 담당교사에게 싸워서 찾아온다. 싸웠다는 것은 학교폭력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싸웠다고 모두 학교폭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담임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학교폭력으로 넘겨버리는 경우가 있다. 학급 내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안에 담임교사가 개입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인 것은 맞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싸운 것과 학교폭력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 싸웠으면 전후관계를 파악하고 잘잘못을 가려 사과하고 화해와 용서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적절한 지도 방법이고 담임교사의 역할이다. 학생들이 싸운 일이 학교폭력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에 담당 교사를 찾는 것은 담임으로서의 직무유기 또는 업무위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대응하는 담임교사는 소수이다. 하지만 소수라도 그 행위가 반복된다면 담당 교사의 업무는 마비된다.
관련 학생이 두 명(피해1, 가해1)이라는 가정 하에, 학교폭력 1건이 발생하면 학부모 및 교육청과 평균 20건 이상의 전화 및 문자 소통이 발생하고, 공식 문서는 10종류 이상, 관련된 기안 문서는 5건 이상 발생한다. 학년별로 1명씩만 이런 교사가 있다고 하면 학교폭력 담당 교사는 수업 준비할 시간도 없이 문서의 늪에 빠진다. 실제로 본인은 현재 일주일에 2일 이상은 하루 30통 이상 통화를 하고 있다. 명심하자, 학교폭력은 싸웠다고 오는 곳이 아니다.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된 이후에는 담당 교사가 더 많은 통화를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신고 직후가 아닌, 1년의 교육과정 상에서의 통화량을 말한다.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되어 관련 학생, 특히 가해관련 학생 학부모와 통화하여 사안 내용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다.
"우리 애가 학교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학교와의 첫 통화가 학교폭력 신고 관련 전화인데, 놀라지 않을 학부모가 어디 있으랴. 학교폭력으로 신고되어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과거의 여러 문제 행동이 쌓여서 온다. 한 두번의 실수와 장난으로 학교폭력 신고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적기 때문이다. 매번의 장난과 문제행동들에 대해서 담임교사는 공정하고 맵짜게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해당 내용을 학부모에게 전달해야 한다. 문제행동이 발생한 날마다 매번.
그걸 어떻게 매번 하냐고 하신다면, 동료교사인 학교폭력 담당 교사는 상당히 힘든 나날을 보낼 확률이 높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주일에 2일 이상은 30통 이상 통화를 하고 있다. 학부모와의 전화통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자신의 자녀가 학교로부터 지속적인 문제행동을 일으킨다는 전화를 꾸준히 받게 된다면 여러 효과가 발생한다.
1) 자녀를 가정에서 좀 더 신경 써서 지도하게 된다.
2) 자녀가 학교폭력 신고를 받았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
3) 전체적으로 학생지도와 관련된 업무가 경감된다.
학교에서 전화를 받고 가정에서 더 케어하고, 신고를 받으면 내 자녀가 해온 평소 행실이 있기에 사과모드로 빠르게 전환이 된다. 학교폭력 신고를 받았다는 내용으로 전화를 처음 하게 되면, 너무나 놀란 나머지 방어모드로 대응하는 학부모가 더러 있다. 자신의 자녀의 말만 믿고 오히려 상대 학생을 역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칭찬할 내용과 지적할 내용은 학부모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학생의 학교생활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 가장 잘 파악해야 하는 사람은 담임교사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에게 자녀의 평소 행실을 묻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겨선 안 된다.
이 원칙은 학교폭력 담당 교사인 내 자신을 성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 우리학교 학교폭력은 공식 발생 건수만 20호를 바라보고 있다. 화해로 마무리한 비공식 신고 건수까지 합하면 무지막지하다. 주변학교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예방교육을 등한시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1, 2학기 창체시간을 이용한 35분 정도의 예방교육영상을 방학중에 나와서 직접 촬영, 편집을 했으며, 학교폭력 예방 노래를 만들기도 하였고 근처 청소년 상담센터와 연계하여 예방캠페인도 2회 진행하였다. 자체적으로 진행한 캠페인은 5회다. 학교폭력예방 포스터, 영상 공모전을 개최했고 축제에는 학교폭력 예방과 관련된 부스를 개설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좌절보다는 새롭게 시도해 볼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하는 중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예방교육을 더 자주, 일상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더 다양한 차원의 교육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폭력이 발생한 뒤에 그 사안을 잘 처리하는 것 보다 10배, 100배 더 중요한 일은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내년에는 프리허그, 인터뷰 촬영 등 더 다양하게 도전할 예정이다.
결국, 함께해야 한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아무리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봐야 무리다. 학교 구성원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다소 교과서적인 마무리지만, 정말 이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