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슈 Mar 04. 2024

설명절 단골음식 LA갈비의 추억

엄마를 닮아서. 엄마처럼 손이 크니까.


"엄마, LA갈비 공구 특가 떴어. 나는 주문했는데 엄마도 주문해 드릴까요?"


"가격 좋네~그래~ 나 5킬로 해줘.~."


명절이나 잔칫상에 올리는 고기음식을 꼽는다면 단연코 갈비찜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우리 집은 늘 명절 밥상에는 LA갈비가 올라왔다. 정확히 말하면 LA양념갈비.

엄마는 명절이 오면 제사도 안 지내면서 출가한 딸사위 손주들 각자 시댁 갔다 돌아오면 맛있는 밥 한 끼 내어주려고 매번 명절 때마다 LA갈비를 준비하곤 하신다. 비단 LA갈비뿐이겠는가. 밥상다리가 휘청할 정도로 육해공에서 올라온 다양한 반찬들이 총 출동한다. 전라도 전주출신 엄마의 모든 음식들은 푸짐하고 정갈하고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예전에는 직접 고기를 사다 갈비양념을 하곤 하셨지만 이제는 연로하셨기도 했고, 요즘은 간편하고 건강한 재료들로 양념한 LA갈비가 많이 나오니까 엄마에게 이제 수고스럽게 하지 말라고 말한 지 수년이 흘렀다. 대형마트 LA갈비를 사서 차리시다가 재작년부터 내가 찾아낸 가성비 좋은 한 브랜드의 LA갈비에 정착했다. 


달콤 짭조름 간장양념이 잘 베어든 LA갈비는 어릴 적부터 늘 엄마가 차리는 명절 밥상에 빼놓지 않고 오르던 음식이었다. 아빠는 차남인데도 불구하고 설명절에는 늘 서울인 우리 집으로 전라도와 경기도 흩어져사는 친가 쪽 친척들이 역귀성을 해 올라오곤 했었다. 추석은 전라도 나주 큰집에서, 설명절은 서울인 우리 집에서. 이렇게 일 년의 중요한 명절 두 가지를 장남과 차남이 나누어 부담하고 있었다. 


서울의 따듯하고 넓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추운 겨울의 설명절에는 늘 스무 명이 넘는 친척들이 모여 2박 3일 혹은 3박 4일간 복작댔다. 큰집에서 치르는 추석보다 더 길었다. 그뿐이겠는가. 설 당일에는 역귀성해 올라오신 할머니를 뵈러 오는 서울인근 사는 이모님들 아빠의 사촌 등 친척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으니, 설 당일은 돌아서면 상 차리고 돌아서면 상 차리는 소위 말하는 돌밥돌밥 그 자체였다. 


부엌에서 일을 돕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늘 명절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음식준비 밑작업 멤버로 엄마와 함께 했다. 나와 엄마가 일을 하고 있으면 작은엄마 세명중 가장 엄마와 잘 맞는 셋째 작은엄마가 먼저 오셨고, 그 후에 넷째, 막내 작은엄마 그리고 멀리 전라도에 사는 큰엄마가 할머니를 모시고 오시면 명절의 온 친척들이 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사음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엄마는 이 많은 친척들을 위해 수북이 전을 부치시고 친척들 돌아가시는 두 손에 음식들을 가득 싸드렸다. 그뿐인가. 엄마가 취미로 배워 구워내신 파운드케이크나 머핀들도 은박지로 야무지게 포장해서 몇 덩이씩 넣어드린다.  


친척들이 모두 모이고 끼니때되면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없는 반찬인 LA갈비를 구웠다.

엄마와 내가 며칠 전부터 정성껏 양념해서 재워두었던 LA양념갈비.

그때는 대형마트도 없었고 인터넷 쇼핑도 없었을 때이니까 정육점 아니면 백화점에서 고기를 사 와서 엄마와 함께 본격적으로 양념 준비를 했다.

양파, 키위, 사과, 배, 마늘, 생강 등 드륵드륵 믹서기에 갈아주고 간장, 설탕, 맛술 등 갖은양념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엄마는 배나 사과 키위 그때그때 있는 과일을 통째로 갈아 넣으셨는데 과일을 넣으면 연육작용을 하기 때문에 고기가 부드러워진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세 가지 과일 중 키위를 넣었을 때가 가장 고기가 부들부들했다이렇게 만든 양념장을 찰방찰방 갈비가 잠길 정도로 부어 숙성에 들어간다. 20명이 넘는 친척들에게 3일 동안 매끼 LA갈비를 먹였으니 고기양이 얼마나 되었을지는 상상초월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엄마는 더 이상 연육작용을 할 키위를 갈아 넣는 수고스러운 양념갈비를 만들지 않는다.

만드실 수 있겠지만 이제는 사 먹는 것으로 수고를 더는 것을 선택했다.


"파는 것에는 어떤 재료를 썼을지 몰라. 나는 직접 만든 다마린간장에, 유기농설탕에 국산 신선한 재료들 다 넣고 재우는데 파는 건 캐러멜색소도 들어가고......"


엄마 마음 다 안다. 하지만 살면서 첨가물 안 먹고살 순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이상, 엄마를 염려하는 딸은 이렇게 말한다.


"그거 좀 먹어도 괜찮아~엄마 마음 알겠는데. 이제 고생 좀 덜합시다. 음식도 많이 하지 마 제발~."


이렇게 몇 년을 말해도 안 되더니 최근 몇 년간은 엄마도 연로해지시고 힘드셨는지 명절 때마다 먹는 반찬의 종류를 조금씩 줄여나가셨다.

솔직히 제사를 안 지내는 데 가족들이 모인다고 잡채, 갈비에 국은 끼니때마다 다르게, 생선도 종류별로 다르게, 나물 3~4가지, 김치도 3가지 정도. 밑반찬 몇 종류 거기에 전을 4~5종. 해파리냉채까지. 이렇게 꼭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엄마는 늘 이렇게 준비해 오셨다.

구정설에 친척들이 모두 모이던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매 끼니를 3일간 차려내셨다. 그 수고를 알기에 여전히 엄마집 부엌에 가면 지금은 쓰지 않는 큰 곰솥이라던지 깊고 넓은 프라이팬. 마치 업소용 같은 느낌의 전부 치는 팬 등 이런 것들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수고스러움이 안쓰럽기까지 한다. 박봉의 공무원월급을 쪼개고 쪼개 살면서 분양을 잘 받아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한 엄마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그렇게 살게 된 것인데, 서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액수의 명절음식재료비가 들어도 큰소리 못하고 바보처럼 친척들에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엄마였다. 엄마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빠나 자식들에게 다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가끔 엄마의 후회스러워하는 볼멘소리도 듣곤 하지만, 시댁에 대해 어디 아쉬움 하나 없는 집이 어디 있겠나 싶다.


그땐 다 그랬을 것도 같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클릭 한두 번에 집 앞까지 도착하는 LA갈비는 신선하고 맛있고 간편하다.

어쩌다 보니 LA갈비 맛을 일찍부터 알게 된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자면 단연코' LA갈비'라 말한다. 

어릴 적부터 명절 때마다 할머니집에서 LA갈비를 늘 먹어왔던 아들이지만 아들은 정작 키위를 갈아 넣은 할머니표 LA갈비를 먹어본 적이 없다.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하고 연했던지!

엄마에게 말해 이 수고스러운 갈비양념을 해서 재워달라 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요리하기 좋아해 일 벌이는 나라서 그럼 이번에 한번 양념을 만들어 재워볼까? 하다가도 또 그만둔다. 왜냐, 지금도 우리 집 냉동실에는 냉동 LA갈비 2킬로가 들어있다. 조금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아주 많다.

그 편리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매를 선택하는 나를 누가 탓할까.


LA갈비를 굽고 있자면 친척들로 북적이던 명절 밥상, 끼니때마다 수북하게 오르던 LA갈비가 생각나 웃음이 난다. 고기를 이렇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어 감사하고, 그렇게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그렇게 엄마의 수고와 사랑을 먹어와서일까. 나도 하나뿐인 아들에게 잘 먹이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며 무슨 요리를 해도 푸짐하게 사람들에게 대접하려 한다.

엄마를 닮아서. 엄마처럼 손이 크니까.


주말에는 아들 LA갈비 구워줘야지.

잘 먹는 게 남는 거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