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가을 10
지난 열 달간 인생 선배이자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서로 뚝 떨어져 지낸 특별한 한 해였다. 매일 성경은 읽었지만 정작 기도는 백일 전부터 시작했고, 몇 줄 혹은 몇 문단의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 내가 한 일의 전부인 것 같았다.
11월에 접어들며 큐티는 사무엘상上으로 이어졌다. 나는 딸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까지 잘 왔다. 일단 그것에 감사하자. 너를 잘 키우고 싶었고 좋은 멘토가 되어주고 싶었고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것 하나는 주고 싶었어.
오늘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무엘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며 왕을 달라고 해. 우리는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해. 기다리는 것도 힘들지. 이게 안 된다면 저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것이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할 거야. 그런데 그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닐 수 있고, 그럴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권면하실 거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 소견에 옳은 대로 결국 종의 길로 가는 줄도 모른 채 고집을 부린다. 그간 우리 삶이 그랬을까 나는 마지막으로 돌아본다.
수능 전 마지막 말씀이다. 왕을 주신다는 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때로 허락하시기도 한다는 뜻이야. 그러나 세상의 왕은 헛된 것이며 내 삶의 주권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잘 듣자. 들어주되 엄히 경고하라고 하셨으니 기억해야 한다. 나도 오래오래 기억할게.
자, 이제 나아갑시다. 큰 숨 쉬고 해내는 거야. 엄마 화살기도로 함께할게. 마지막까지 애쓰자.’
***
딸은 수능 전 예비 소집에 다녀왔고 마지막으로 통화할 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긴 그리고 마지막이 된 삼십 분간의 통화였다. 오후 네 시가 되면 학원에서 사용했던 태블릿도 반납한다고 했다. 나는 오후 세 시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사랑한다는 말은 내일 만나서. 긴 얘기도 내일.
자, 출전해.
엄마의 마지막 메시지야.
➡답글 2024. 11. 13.
나의 마지막 메시지도,
응, 담대하게. 내일 만나.
매일 주고받은 메시지는 우리만 아는 비밀로 남을 것이다. 다만 그 모든 시간에 사랑이 있었노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그 시간에 꼭 알맞은, 충실한 사랑이었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딸은 마음껏 울어도 되는 시간이 왔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근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원래부터 많지 않았고, 흐르는 시간을 당해내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라는 존재의 미약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점도 있다고 했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회복된다고. 나는 사랑을 더한다.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회복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누군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삼백 개의 메시지, 내 마음에 있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