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교실에 오세요 05
고민을 털어놓는 비밀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우리 교실에서 글공부하는 아이들의 글은 대부분 솔직하다. 어쩌면 이토록 솔직할 수 있을까 혼자 읽다가 감탄할 때가 많다. 글로 솔직하기란 어른도 힘든 일인데 나는 아이들의 글을 통해 그들을 배우고 글 쓰는 마음까지 바로잡을 때가 많다. 누군가의 글이 그것이 어린아이의 글이라 해도 스승이 되는 것이다.
공부, 5학년
나는 공부를 많이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4시간 30분 학원을 가고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셀 수 없이 많다. 언제는 숙제를 하느냐고 새벽까지 했는데도 다 못한 적도 있다. 항상 숙제는 4시간은 기본으로 걸린다. 그리고 공부는 정말 심각하게 많이 한다. 우리 학교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내 친구들은 항상 논다. 그래서 더욱더 부럽다. 나는 놀고 싶은데 엄마는 허락을 잘 해주시지 않는다.
일단 나는 공부가 싫은 3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나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내가 공부로 성공할 확률은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공부하기 싫고 그것 때문에 직업을 못 얻고 백수로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공부 말고 다른 데에도 소질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부를 많이 하고 나서부터 나와 엄마는 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나한테 글씨를 잘 쓰라고 혼을 내시는데 나는 정말 그것이 안 된다. 그래서 엄마는 글씨를 못 쓴 공책을 다 찢고 다시 쓰게 하셔서 밤을 새울 뻔한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신경 쓸 것이 나의 성적과 글씨를 포함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부쩍 피곤해져서 수업 시간에 계속 눈이 감기고 잠이 온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글씨로 부담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즘 나는 친구들과 조금 얘기를 덜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공부를 해야 되어서 학교 끝나고 친구와 놀지를 못하니까 친구와 말수도 적어지고 얘기하는 시간도 적어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에게 자유 시간을 제발 좀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러면 엄마는 항상 공부 언제 할 거냐면서 부담을 주신다. 위 세 가지 이유가 내가 공부가 하기 싫은 이유다.
공부가 힘든 이유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글씨로 부담을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자유 시간을 제발 좀 주셨으면 한다고 이보다 어떻게 더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만난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어린이 글쓰기 글감에도 난이도가 있다. 재밌는 일, 기억나는 일, 경험한 일은 쉬운 편에 속하고 슬프고 부끄럽고 힘든 일은 꽤나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어려운 걸 아이들은 어떻게 자꾸 해낼까.
나는 좋은 글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이란 글쓴이의 진심이 담겨 감동을 주는 글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게 하는 글이다. 한 사건을 다시 보게 하는 글이다. 이 글을 쓰고 몇 달 뒤 어머니를 잠깐 뵐 수 있었는데 아이가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이 그 아이의 실력이니 믿고 응원해 주시라는 내 말에, 자신이 생각해도 아주 잘 쓴 글이 있었다고 그래야겠다며 웃으며 가셨다.
친구는 일회용품이 아니야, 5학년
세상에는 여러 타입의 ‘친구’들이 있다. 재미있는, 착한, 센스 있는 친구들부터 배려해 주고, 신뢰감 있고, 공부 잘하는 친구까지. 하지만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의 친구들과는 반대의 친구들이다.
그 친구의 착한 척에 넘어간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지난가을 이맘때쯤이었다. 영어학원에서 만나 그 교실에 같은 학년이라고는 나와 그 친구, 둘밖에 없었던지라 우리 둘은 친자매처럼 꼭 붙어서 집에도 함께 갔다. (중략)
문제는 같은 반이 되고부터였다. 그때까지 나는 너무 행복하고, 시작될 5학년 인생이 더욱 기대되었다. 그 애는 친절하게 시작했다.
“나 물 한 모금만.”
“나 공책 좀 보여줘.”
등의 말들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강도가 심해졌다.
“서랍장에서 시간표대로 책 좀 꺼내줘.”
“이 책 너가 우리 반에 기증한 책이니까 니가 갖다 놔.”
그 책은 그 친구가 읽은 것인데 나는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해달라는 것도 다 해주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 반복되는 일들이 너무 싫었다. 니건 니가 하라고 내가 왜 해야 되냐고 말 한마디 못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중략) 하루는 정말 죽을 만큼 힘들어서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중략) 1시간, 2시간이 지나도록 모든 일들을 엄마와 이야기 나누자, 내 가슴에 박혀있던 못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중략) 엄마와 고민을 나누고 적극적으로 싫다는 표현을 하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 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친구는 일회용품처럼 한 번 시키고 버리는 존재가 아니야. ‘진짜 친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꼭 생각해 보면 좋겠어.”라는 말이다.
우리 교실에서는 스스로 탄생시킨 글은 발표가 원칙이다. 예외가 있다면 비밀 글, 비밀이라고 상단이나 하단에 표시된 글이다. “선생님한테도?” 눈 동그랗게 뜨는 나에게 아이들은 하나 같이 “아니요. 선생님은 읽으세요.” 말해준다. 그때만큼은 모든 걸 다 가진 표정으로 노트를 들고 고마워, 답한다. 아이들의 솔직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어른이 많다면 좋겠다. 글에 깊이 담긴 고민과 비밀들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빛을 본 고민과 비밀이 더는 외롭지 않도록. 고민과 비밀을 털어놓은 힘으로 아이들은 세상 속으로 성큼 걸어간다. 이 글을 쓴 아이에게 선생님이 공개해도 될까,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이제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준 엄마의 힘, 아이가 글로 담아낸 힘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밌고 신나고 좋았던 일을 쓴다. 그러다 슬프고 화나고 부끄럽고 힘든 일은 어쩌지 고민하게 되는 날 여럿이 쓰는 힘이 발휘된다. 선생님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누군가 한 사람 진심을 담은 글을 써낼 때, 그것을 보며 말해도 되는 안전한 분위기라고 느낄 때 그 반 아이들은 글로 쓰기 시작한다. 글이라는 도구가 익숙하지 않아도 말보다 글이 먼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나는 각 반마다 팀워크를 만들어 가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고민과 비밀을 가득 담은 글이 나오면 개별적으로 불러서 때론 노트를 들고 읽으며 칭찬할 거리를 찾고 나눠주어 고맙다고 한다. 먼저 쓴 사람이 고민한 만큼 들은(읽은) 사람도 발전하기 때문이다. 또 나 자신이 먼저 완벽하게 망가진다. 이번 주 나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하듯 털어놓는다. 소곤소곤. 누군가 욕하고 싶었던 말, 어른이지만 부끄러웠던 행동, 슬펐던 일, 화났던 일, 비밀을 지켜달라고도 안 하지만, 비밀이 새어 나가 문제 된 적이 없는 걸 보면 아이들 입이 더 무거운 것이 틀림없다. 서로 비밀결사대가 되어 우리 안에서 후련함을 맛볼 때 아이들은 쓰고 또 쓴다.
옳고 그름은 어쩌면 나중이다. 오늘 못 본 자신의 부족은 내일 보면 된다. 아이들이 완벽히 자신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할지라도 내가 무조건 글 쓴 아이 편을 먼저 드는 이유다. 오늘 쓴 아이의 글은 오늘은 옳다.
좋은 글은 사람과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한다.
솔직한 글은 믿어주는 독자 안에서 태어난다.
글로 털어놓은 진심은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