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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있는 글, 살아 있는 글

글쓰기 교실에 오세요 08

by 싱싱샘

우리는 보고 듣고 말하며 산다. 순간순간을 산다. 그런데 글을 쓰려면 자꾸 설명하게 된다. 독자가 알아야 할 기본 배경은 반드시 설명해야 하지만, 나의 감정과 생각을 일으킨 순간, 장면만큼은 생생하게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글쓴이를 이해하고 나아가 공감하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생생하게 살려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눈앞에 그려지듯 쓰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설명과 묘사를 구분해 쓰기 쉽지 않다. 나는 눈에 훤히 그려지는 글을 발견할 때마다 곧바로 말해준다. “와,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 같아. 이렇게 쓰면 정말 좋겠다.”

둘째, 겪은 일 쓰기의 원칙 실제로 한 것, 보고 들은 것, 말한 것,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 중에 말한 건 말한 대로, 들은 건 들은 대로를 살려 쓰는 방식이다. 이때 대화가 힘을 발휘한다.



매일 밤 동생이랑 나눈 이야기, 3학년


“형아, 나 배고파.”

“그냥 물배 채워.”

“형아, 나 오늘 나쁜 일 있었어.”

“뭐가?”

“어떤 애가 나 때리고 도망쳤어.”

“이름이 뭐야?”

“몰라.”

“키 몇 센티미터 정도였어?”

“120센티미터 정도야.”

“몇 학년이야?”

“동갑”

“혹시 그 애 아니야?”

“누구?”

“그 막 몸으로 애들 쳐내는 애.”

“아니.”

“어쨌든 자자.”

“배고파!”

“그냥 자. 벌써 열두 시야.”

“망했다.”

“잘 자.”

“꾸르륵 꾸르륵”

“형아, 일어나. 나 배고파.”

“자, 물 한 컵. 아무튼 그 애, 엄마한테 이르자.”


주말마다 언니에게 하는 말, 3학년


“언니, 나랑 게임하자.”

“싫어.”

“내가 이불 펼게. 나랑 놀자.”

“싫다니까! 나 학원 가느라고 힘들었어.”

“집에서 폰만 했잖아.”

“그전에 갔었어.”

“난 세 개나 갔거든! 저번에는 언니가 하자고 해서 한 거니까 이번에 해 줘.”

“싫어! 다음 주에 해줄게.”

“그럼 진짜 속을 줄 알아? 내가 언니 때문에 수학 문제집도 열심히 풀었다고. 그리고 저번 주에도 해준다고 안 해줬잖아.”

“그래서 뭐? 왜 나 때문에 문젤 풀어? 그리고 열심히 푸는 건 좋은 거잖아.”

“그래도 빨리 풀었다고.”


대화는 한 장면을 포착해서 쓸 때 가능하며 글을 싱싱하게 만들어준다. 하루 일을 대강 요약하는 글에서는 생생함이 살아나기 어렵고, 대화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대화를 글에 넣는 법을 가르치기 전, 대화만으로 글을 써보는 시간을 따로 마련한다. 보기글처럼 대화만으로도 얼마든지 글이 된다. 원고지에 대화를 쓰면 들여쓰기와 줄 바꿈 때문에 분량이 순식간에 느는 경험도 한다. 〈매일 밤 동생이랑 나눈 이야기〉는 200자 원고지 세 장, 〈주말마다 언니에게 하는 말〉은 두 장을 가뿐히 채운다. 분량이 느는 것은 사실 덤인데 이를 알게 된 아이들은 대화를 넣어 분량 압박에서 자연스레 벗어난다. 가끔 분량을 늘리기 위한 ‘대화 꼼수’가 등장하지만 그 정도는 눈감아주는 싱싱샘이다.


그렇다면 대화는 언제 넣을까?

그 대화가 중요한 것일 때다. 내가 한 말이든 상대가 한 말이든 ‘살아 있는 말’이 장면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될 때 직접 옮긴다. 대화를 있는 그대로 다 옮길 필요는 없고(똑같이 기억해 옮길 수도 없으므로), 중요한 말을 잘 끌어다 쓰면 된다(引用 남의 말이나 글을 자신의 말이나 글 속에 끌어 씀).



나만의 고민해결사, 4학년


나는 고민이 많다. 하지만 모든 고민을 엄마에게 말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나는 나의 친한 동생에게 고민을 얘기한다.

“야, 나 시험 점수가 너무 낮게 나왔는데 어떡해?”

“괜찮을 거야, 언니”

“엄마가 뭐라 하면?”

“몇 점 나왔는데?”

“○○점”

“에이, 높게 나왔는데 뭐.”

이렇게 친한 동생과 얘기를 나누면 내 걱정은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만나는 화, 목, 토를 기다린다.

“언니, 같이 가!”


대화가 들어가면 읽는 맛이 확실히 살아난다. 아이들은 가감 없이, 들은 것은 들은 대로, 말한 것은 말한 대로 쓰기 때문에 더욱 솔직하고 재미있는 글이 된다.



엄마의 스웨터, 5학년


11월이면 겨울이라고 할 수도 있는 계절이다. 오늘의 온도는 자그마치 영하 3도. 날씨가 추워지니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진다. 여름에 반팔티에 반바지였다면 요새는 두꺼운 패딩은 기본이다.

사실 나는 옷이 많다. 어림잡아 겨울옷만 스무 벌이 넘는다.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는 것이다. (중략) 나는 후드티와 맨투맨 같은 종류의 옷을 좋아한다. 이번에 산 옷도 그런 종류였는데 거기서 봤을 때는 옷이 그렇게 괜찮았는데 집에 와서 입으니 매장에서 봤을 때랑 느낌이 다른 것이다. (중략) 이러니 입을 옷은 많지만 학교 갈 때는 항상 고민고민하다 아무거나 입고 가기가 일쑤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엄마 옷에 눈길이 갔다. 지금까지 내가 뺏은 엄마 옷도 꽤 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엄마 옷장을 구경하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옷을 한 벌 찾았다. 나는 그 옷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엄마, 나 이거 입어도 돼요?”

물어보았다.

“니가 가져간 내 옷이 몇 벌인데 다 뺏어가려고 하냐!”

그래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얼마에 파실 거예요?”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자 엄마는 황당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

(후략)


엄마와 딸 사이의 실랑이가 오가고, 딸은 옷값을 조금 깎고 용돈을 털어 사게 된다. 마지막에는 ‘용돈을 받기 전까지는 엄마의 또 다른 옷을 살 수 없겠지만 그래도 옷을 사서 기쁘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라고 글을 마무리한다. 글을 읽는 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설명 대신 장면과 대화를 통해 마음이 드러나고, 글도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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