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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느긋 Mar 21. 2024

한 뼘 크기에 자리 잡은 이름의 무게

내 소속이 적힌 명함이 생겼다

다들 어렸을 적 가족신문을 만든 적이 있을 것이다. 하얀 4절지 위에 가족 간에 있었던 대소사들을 적고 가끔은 가족구성원에게 남기는 따뜻한 메시지를 적으며 공간을 채워나가는 작업이었다. 이게 뭐라고, 우리 가족은 달에 한 번씩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가족신문을 꾸몄다.


최근 본가에 갔을 때, 가족신문을 보며 엄마랑 다시 한번 “참 열심히도 만들었네”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신문이니, 신문의 이름도 있어야겠다. 우리 집 신문의 이름은 <울타리>였는데, 동그란 컵을 대고 원형 세 개를 만든 뒤 직선으로 깎아내듯 디자인한 로고도 있었다.


가족신문을 만드는 내내 울타리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해서 그 단어 자체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고, 초등학생이 울타리에 대해 깊게 생각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신문을 보다가 문득 아, 하고 깨달았다. 그건 나는 생각보다 소속을 중요시해 왔구나 하는 뒤늦은 자각이었다.


중학생 때는 다음메일을 주로 썼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다음메일은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의 메일 주소와 제목 그리고 내용을 쓰는 란 사이에 ‘소속’이라는 란도 있었다. 유용하게 쓴 사람은 유용하게 썼겠으나 비워두면 비운 채로 발송되는 별 의미 없는 칸이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이 칸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 신상이 지나치게 노출되는 **중학교 같은 것을 쓰고 싶지는 않았고, 내가 정말 소속되어 있는 곳, 그러니까 거짓은 아니되 적당히 내가 여기에 있다는 뉘앙스를 주고 싶은 그런 소속. 그런 생각 끝에 도달한 것이 당시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 이름이었다. 그리하여 중학생 시절의 내가 발송하는 메일의 소속 란에는 늘 ‘:+:신화창조:+:’라고 적혀 있었다. 이 부분마저도 특수문자를 활용해 꾸미고 싶다는 욕망이 담겨 있다는 점이 재밌다.


그 후로 어딘가에 소속될 때마다 나는 그곳에 들어 있는 소속감을 즐겼다. 동아리라든가 학원이라든가 아니면 그 시절 어린아이가 소속될 수 있는 곳이라야 뻔했겠지만 그래도. 나는 왠지 나를 어느 정도 감추어주는 무리와 그 속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즐겼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명함은 내가 속해 있는 곳을 90*50mm 규격의 종이에 확실하게 새겨서 보여주는 물질이었다. 명함 이전에 대학교 학생증이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뭐랄까... 내게 학생증은 도서관을 출입할 수 있는 패스카드 같은 인상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려고 학생증을 내미는 짓을 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신입사원 시절을 몇 번 거치는 사이에 명함을 몇 번 만들기는 했지만, 내게 ‘명함’이라는 콘텐츠가 확실하게 인식된 것은 최근까지 일한 출판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였다. 첫 출근을 하고 오리엔테이션을 듣기 전, 앞으로 내 사수가 될 선배가 먼저 명함을 건네주며 나에게도 곧 명함을 만들어야 할 거라고 알려주었다. 명함의 한 면에는 회사의 로고와 이름,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 같은 기본적인 정보가 적혀 있었고, 그 뒷면에는 쨍한 단색 배경에 흰 글씨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당시 회사에서 출간된 도서에서 발췌한 문장이었는데,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마음이 훅 따뜻해졌다. 그건 사람을 처음 알아가는 것에 대한 막연함과 설렘이 담긴 문장이었다. 부끄러워서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선배에게 명함을 처음 받았을 때 그 문장을 읽고 코끝이 시큰했다.


그때 나는 첫 출근을 한 신입사원이라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히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명함의 글귀를 읽은 순간부터는 설레기 시작했달까. 이제부터 이 회사와의 관계가, 명함을 준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될 거라는 환한 기대감이 들었다. 선배는 명함을 자유롭게 만들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당연히 그 회사에서의 내 첫 명함은 같은 배경색과 문장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첫 명함은 명함이 100장씩 담긴 케이스 두 통을 받았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나누어주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썼다. 명함을 줄 때마다 확률 50퍼센트의 뽑기처럼 상대방이 그 문장을 알아봐 주기를 바랐고 읽고선 내게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대했다.


그 후 회사에서 직급이 바뀌고, 회사의 주소가 바뀔 때마다 명함을 다시 만들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문구나 배경을 혹은 재질을 조금씩 바꾸기도 했다. 속한 회사에 따라 규격에 맞춰 만들어야 하는 곳도 있었겠지만, 내가 다닌 회사는 그런 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처음 만든 명함만큼 빠른 속도로 소진된 적은 없다. 환경이 더 빠르게 바뀐 탓인지 아니면 회사에 오래 있는 만큼 ‘처음’ 만나는 사람의 수는 줄어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동시에 역시 처음의 힘이란 이렇게나 대단하네 생각하기도 한다.     


종종 첫 명함을 만들었을 때의 설렘을 돌이켜본다. 나는 명함을 주고받는 일을 꽤 좋아한다. 이 사람(혹은 회사)은 명함의 뒷면을 이렇게 활용하는구나, 이 사람(혹은 회사)은 이런 재질을 좋아하는구나, 같은 감상들. 특히 미술을 하거나 사진작업을 하는 분들을 만나면 개성이 크게 드러났고 회사의 명함을 받을 때면 그 회사의 특징 같은 것이 상상되기도 했다. 어떤 분은 투명한 PET소재로 명함을 만들었는데, 그러면서,  아무래도 종이가 아니니까 불편하더라고요,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어떤 회사는 재생지로 명함을 만들어 한 귀퉁이에 재생지 사용마크가 형압처리되어 있기도 했다.


회사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만든 명함은 공정이 많이 들어갔다. 제작하는 곳에 답사를 가서 샘플도 살펴보는 등 이런저런 공정을 많이 거쳐서 만든 명함이었다. 그때는 빳빳하고 두툼한 것이 좋았고 수작업 느낌이 났으면 해서 그렇게 만든 것인데 예쁜 것에 비해서 생각보다 명함 지갑에 많이 들어가지 않고, 카드 지갑에도 꽉 껴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래서 영업하시는 분들이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분들의 명함이 얇은 편이었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회사를 떠나고 시간이 좀 흐른 탓에 이제는 명함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진 않다. 최근에는 주로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작업하는 사람과만 작업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듯하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면, 명함을 하나 만들어둘걸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한다. 프리랜서로서 명함을 만든 적은 없지만 한 번 만들어두어야 할 시점일지도. 내 소속이 적혀 있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 자체로 말할 수 있는 명함을.

      

나는 처음 만나는 사이에 명함을 주고받는 그 분위기를 좋아한다. 미리 메일로 연락을 나눈 사이이지만, 이미 휴대폰 번호도 다 알고 있지만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그 네모난 조각을 주고받은 뒤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분위기를 한결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손이 괜히 머쓱해서 네모난 모서리를 손끝 둥근 부분으로 쓸어보며 그 사람의 이름을 다시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 그러면서 명함으로 조금 할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자연스럽게 커피를 기다리는 일. 테이블 위에 상대방의 명함을 올려둔 채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것들을 계획하는 것들.


대화 속에서 어떨 때는 서로 생각이 겹쳐져 즐거웠다가, 아닐 때는 숙고하다가 조금씩 타협점을 찾아가기도 하며 여러 가지를 도모하는 일들은 명함을 주고받으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 이름을 다시 한번 확실히 알려주며,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일들에 관해선 이쪽으로 연락을 주세요 하며 보내는 친절한 신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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