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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06. 2021

위로의 가스레인지, 눈물의 인덕션

어쨌든 살리는 걸로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시절, 자주 놀러 오던 동생이 있었다. 걔는 가스레인지로 내 상태를 파악했다.    

  

“하이고, 언니. 가스레인지 좀 보소? 어젠 또 뭔 일이 있던 거야?”     


학교에선 조교, 학교 밖에선 문화센터 강사였던 나는 늘 남에게만 상냥한 아가씨였다. 나의 상냥함은 통장을 채웠기에 그게 좋은 건 줄 알았다. 나와 남 사이의 상냥함을 조율하는 방법을 그때는 몰랐다. 최선을 다해 남에게만 상냥하고 나를 홀대하던 시절, 그렇게 정서 방전 상태가 되면 집에 오자마자 가스레인지를 닦았다. 지금 당장 모델하우스 납품이 가능할 만큼 가스레인지를 닦고 나면 방전이 부른 방향 없는 분노도 차분히 가라앉곤 했다.      


단칸방 부록으로 붙어있던 주방의 가스레인지를 닦으며 차분해졌던 나는 30평 아파트 주방의 인덕션을 닦으면서 차분함을 잃었다. 남편의 재택근무와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시작됐던 때, 나는 하루 종일 뭔가 하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뭐지, 하면서 인덕션을 닦다 보면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이 시국에 남편이 일자리를 잃지도 않았고 아이들의 재택수업을 봐줄 사람 없어서 동동거릴 일도 없는, 그러니까 객관적 지수로 어디 하나 아쉬울 게 없는 상태에서 떨어진 눈물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밖에서 최대치로 치이다가도 가스레인지를 박박 닦으며 말간 마음을 만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왜 닦으면 닦을수록 내가 더 뿌예지는가.      


문제를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회피하거나 아예 몰입하거나. 회피라는 선택지는 선택할 수 없기에 몰입으로 기울었다. 인덕션을 닦다가 환풍기 필터를 분해했다. 필터의 묵은 때가 과탄산과 구연산의 화학반응으로 흐물흐물해지는 찰나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면 눈물이 떨어질 틈이 없었다. 닦으면 닦을수록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의 물음표는 계속 치고 올라왔으나 그 물음표마저 과탄산 속에 다 쑤셔 넣었다. 니가 지금 올라와봤자 해결되는 게 없단다. 그러니 그냥 너도 여기로 들어가거라... 의 마음이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이라는 거인에게서 나의 일상을 탈환해야 했다. 내 탈환을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없냐고 징징거린다고 해결될 성질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해버리는 것. 해버리고 휙 나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 내가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일상이었다.      


스물몇 살의 가스레인지와 마흔몇 살의 인덕션 사이를 본다. 둘 다 나를 일으키는 구체적 방법을 말하고 있었다. 살림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서 나왔다지. 그렇다고 해도 이 노동이 진짜 나를 살렸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설명 안 되는 눈물이 그쳤으니 일단은 괜찮은 걸로 치자. 해답은 아니더라도 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 그게 어른이겠거니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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