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선생님은 그의 책에서 ‘정리 안 된 집은 아이의 창의성에도 좋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 집 삼 형제가 그 시절 대표 엄친아로 주변 또래를 꽤나 쪼았을 법 한데 말이다. 하나도 아니고 셋이 엄친아인데 그 집 엄마가 저런 말을 하다니! 박혜란 선생님의 책은 저 문장으로 내게 경전이 되었다.
눈길 닿는 모든 곳이 심란했지만 눈길을 주지 않고 내 책만, 내 모니터만, 내 건반만 바라보며 아이 없는 시간을 맘껏 누렸다.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2시까지 한마디도 안 하는데 한가득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 그 기분을 더 진하게 누리기 위해 모든 집안일은 뒤로 미뤘다.
미뤘어도 살림들은 말을 건다. 그릇은 설거지통에서 “나 여기 있어~” 했다. 책갈피를 떨어뜨려서 주우려고 하면 소파 끝에서 뭉쳐진 먼지들이 “하이~ 방가방가” 한다. 그들의 소리가 들려도 ‘닥치거라!’를 외치는 패기, 그 패기의 근원은 박혜란 선생님이었다.
락다운이 시작됐다. 읽고 쓰고 건반을 치는 일도 락다운 됐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집에 있으니 집은 더 어질러졌다. 이럴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던 꼼꼼한 어질러짐. 그래도 나의 경전이 괜찮다고 했으니 안 괜찮은 거 알면서 그냥 삭혔다.
삭힘이 울화가 되어 치밀어 오르기 직전, 뭔가에 홀린 듯 식탁을 치웠다. 식탁은 애들 책, 내 책, 마스크, 가방, 수건, 양념통, 연필 등등 하나의 카테고리로 못 묶을 애매한 뭔가들의 집합소였다. 밥을 먹을 때는 뭔가들을 옆으로 밀어냈고 식사 시간이 끝나면 다시 뭔가들이 점령했다.
그런 식탁을 먼지 한 톨 허락하지 않게 치웠다. 그랬더니 식탁이 메타버스가 됐다. 분명 여기 있지만 여기 있지 않은 가상공간, 메타버스에 노트북을 탑재해 두드리니 금방 A4지 한 면이 채워졌다. 나도 여기있지만 여기 아닌 거 같았다.
박혜란 선생님의 집이 어질러져 있어도, 애 셋이 들고 날뛰어도, 본인이 원하는 작업을 하셨던 건 그분의 내공이었던 거다. 물건들의 조잘거림에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으면서 사람과 물건이 함께 조잘대면 매우 아무래져버리는 나는 박혜란 선생님의 내공을 따를 수 없다.
사람 입을 막을 수는 없으니 물건 입을 막아야 했다. 그렇다고 다 막을 필요는 없고 식탁 위 조잘거림만 막으면 됐다. 식탁이 깨끗하면 그곳이 내 메타버스가 되어 내 집중력을 견인했다.
보이는 정리는 안 보이는 정리의 시작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식탁을 닦으면서 마음이 같이 닦이는 마법, 설사 어설픈 열정이라고 해도 거기 숨은 마음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에 담기에도 촌스러운 진정성 같은 거 말이다. 식탁을 닦는 숨은 마음은 진정성이었다. 이 하루를 이렇게 맑게 보내보겠다는 다짐을 시각화하는, 답 없는 하소연을 그치겠다는 다짐. 식탁력은 나도 모르는 내 진정성을 찾아줬다.
식탁을 싹싹 닦은 행주를 탁탁 털어 창가에 걸쳐 놓으니 햇빛이 쨍하게 훑는다. 행복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말을 아주 조금 이해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