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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19. 2021

나는 빈약해지고 아이는 풍성해졌다

드라이어의 효용

큰맘 먹고 몇 시간 검색을 한다. 몇 개 스크랩을 한다. 조심스럽게 내민다. 그들이 하는 대답은 똑같다.


"손님, 이건 드라이입니다. 펌으로 나올 머리가 아닙니다"


드라이어는 정말 나와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인가.


헤어드라이어를 어학사전에서 찾으면 '젖은 머리를 말리는 기구. 찬 바람이나 더운 바람이 나오며 머리 모양을 내는 데도 쓴다.'라고 나온다. 이 말은 즉, 드라이어는 머리 말리는 데만 쓰는 게 아니라 그만큼 머리 모양을 내는 기능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침에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로 내 경로를 남겼다. 내가 의도한 머리 모양과 내 손끝에서 나오는 머리 모양은 늘 달랐다. 대충 말려 질끈 묶었다. 질끈 묶는 것도 스타일스러운 '포니테일'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다. 드라이어가 내손에서 그의 기능을 하는 날이 없었다.


질끈 묶는 끈이 수시로 끊어질 만큼 머리숱이 넘쳤다. 어느 날 남편이 아침 침대를 보고 말했다. "새벽에 누구랑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어? 머리가 왜 이리 많이 빠져?


큰아이는 6년 동안 기른 머리가 간신히 단발이었다. 그랬던 아이 머리카락이 어느 날부터 고무줄을 끊어먹기 시작했다. 나의 숱이 딸에게 옮겨간 걸까. 나는 빈약해지고 아이는 풍성해졌다. 덩달아 드라이어가 바빠졌다. 나는 넘치게 빠지는 머리숱을 하나라도 지키기 위해 드라이어를 들었다. 아이의 넘치게 불어나는 머리숱을 자연건조했다가는 바로 쉰내가 났기에 드라이어를 들었다. 아마 드라이어가 말을 할 줄 알면 그랬겠지.


"아니, 몇 년간 거들떠도 안 보다가 갑자기 왜 이리 부려먹는 겝니꽈아아~"


어릴 적 할머니가 머리를 빗겨주면서 "하이고, 이 묵직한 거 봐. 이쁜 우리 강아지" 했던 말을 이제야 이해한다. 머리 빗길 때 느껴지는 무거운 질감은 파릇파릇한 아이 생명력의 다른 이름이다. 나의 감탄은 무심한 아이의 유튜브 커버송 어디엔가 묻힌다. 나도 그랬다. 유튜브 대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볼륨을 드라이어 소리보다 더 높였던 기억.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일생은 일정한 주기를 바탕으로 반복된다. 반복의 주체는 30년쯤 지나 '이게 그거구나'를 알아챈다. 조금 일찍 알았으면 그 앞선 반복의 자리에 있던 사람을 한번 더 끌어안아줬을 텐데 싶다. 내 머리를 빗기며 내 할머니가 하던 말 그대로를 내 아이에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할머니를 안을 수 없으니 대신 아이를 꼭 안아본다. 머리 말리다 말고 왜? 의 질문이 동그란 눈에서 쏟아진다. 할머니가 없어서,라고 말할 수 없으니 그냥 뽀뽀를 해버린다.


틈만 나면 가출하려는 내 머리카락을 드라이어의 미지근한 바람으로 살살 달랜다. 드라이어로 스타일은 만들 수 없어도 젖은 두피를 잘 말리는 건 이제부터 꼭 하려고 한다. 그래 봤자 나는 더 빈약해지겠지만 마음까지 빈약해지진 말라고 드라이어가 말한다. 드라이어의 잔소리를 듣는 느슨한 방학 아침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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