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창세기_14
그날 밤, 바람이 이상했다. 광야의 먼지가 한 방향으로만 휘돌았다. 불도 피우지 않았건만, 장막의 천이 불빛처럼 흔들렸다. 이삭은 깊이 잠들어 있었고, 하인들은 모두 뒷장막으로 물러났다.
아브람은 그 기운을 먼저 느꼈다. 어느덧 익숙해진, 그러나 결코 완전히 익을 수 없는 어떤 기운. 그는 무릎을 꿇었다. 자연스럽게, 숨도 조아리듯.
“여기 있습니다, 주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도, 소리도, 형체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분명한 존재가 장막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숨결이 닿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 한 단어도 말하지 않아도 의미가 전해지는 순간.
“너는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그 이름 하나가, 그의 어깨 위에 올려졌다. 열국의 아비. 하늘의 별, 땅의 모래 같은 수많은 백성의 시작이라는 의미였다.
아브라함은 눈을 감았다. 입술을 깨물며,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축복인지, 짐인지 묻지 않았다. 그는 명을 따를 자였고, 그 믿음은 이미 시험을 견뎌낸 검이었다.
그때, 사래가 장막을 걷고 들어왔다. 그녀는 그대로 선 채, 그 기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고개를 숙이지도, 무릎을 꿇지도 않았다.
“오셨습니까”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정말 당신이 이삭을 제물 삼으라고 아브람에게 말했습니까?”
고요가 일순 무너졌다. 장막 안 공기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내가 물을 자격이 없는 줄은 압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나는 그의 어미입니다. 어찌 내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아브람에게만 말할 수 있습니까."
그 순간, 그 존재가 움직였다. 형체 없는 그것이 사래에게 한 발 다가왔다.
“너의 마음을 안다.”
목소리도 아니고, 울림도 아니었다. 그저 사래의 가슴 안쪽 깊숙이 새겨지는 하나의 문장이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 길은 없었을 것이다.”
사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뱉었다.
“사래가 아니라, 사라. 열국의 어미라 이르셨죠? 하지만 나는 후손보다 오늘이 급합니다. 이 상단이 무사하길, 내 삶이 조금 더 평탄하길, 그걸 원합니다.”
아브람과 사래에게 신이 바람처럼, 모래처럼 웃는 게 느껴졌다. 거칠지만 따뜻한 웃음이었다.
“그 소원, 내가 들어주리라.”
그 순간, 장막 안을 채운 묵직한 기운이 빠져나가듯 사라졌다. 장막은 다시 고요해졌다. 모래바람은 방향을 잃었고, 불빛 없는 밤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떴다. 사라는 팔짱을 낀 채 문가에 서 있었다.
“당신은 감격스럽나봐?”
그녀가 물었다.
아브라함은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주의 이름만 불러도 벅차오.”
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물건 재고가 맞게 떨어지면 그게 제일 기뻐.”
그녀는 장막을 나섰다.
그 밤, 사라는 사라가 되었고,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