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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장례식

다시쓰는 창세기_15

by 음감

아브라함은 긴 병 없이 갔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삭과 마른 대추를 나눠 먹었고, 그 다음 날 해가 들지 않은 방 안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천막 안은 정적이었다. 고함도 통곡도 없었다.


사라는 앉아 있었다. 그의 몸이 식어가는 동안, 그녀는 이불 끝을 곧게 맞췄다. 이불 안쪽으로 아브라함의 손이 반듯하게 모아져 있었다.

거칠고 단단했던 손, 그 손으로 그녀의 장막을 세웠고, 수많은 밤을 건너왔다. 그러나 그녀는 울지 않았다. 눈동자는 젖었으나,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았다. 사라는 하인들에게 명을 내렸다.


“성대한 장례를 준비하라.”


그 말엔 망설임도, 부드러움도 없었다. 장례의 규모는 그가 살아온 시간만큼 넓고 깊어야 했다. 장막은 모두 검은 천으로 둘러졌다. 향은 아라비아에서 온 귀한 나무로 피웠고, 조문객에게는 아브라함이 생전에 즐겨 마시던 무화과주가 돌려졌다.


이삭은 상복을 입고, 조용히 사람들을 맞았다. 그 누구도 오열하거나, 옷깃을 찢지 않았다. 슬픔은 질서 있게 정리되었고, 상단의 주인은 마지막까지 품위를 지켰다.


장례의 마지막 날, 사라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무덤 앞에 선 사람은 그녀 혼자였다. 바람은 적당히 불었고, 모래 위에는 새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녀는 돌 위에 앉아, 고요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당신은 끝까지 충직했어. 불만을 표한 적도 없었고, 다른 욕심도 없었지.”


그녀는 땅을 바라봤다. 모래 알갱이가 흘러내렸다.


“한 여자의 하인으로 살아준 것, 고마웠어.”


긴 침묵이 지나고 그녀는 일어섰다. 옷자락을 털고, 무덤 가장자리에 돌 하나를 얹었다. 무덤을 지키는 마지막 징표였다. 그리고 돌아섰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사라의 발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상단의 주인이었고 내일은 또 장부를 확인해야 했다.


이삭은 그날 밤, 어머니의 방 앞에 잠시 멈췄다가 돌아갔다. 사라는 불을 켜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그녀는 조용히 아브라함이 쓰던 잉크와 붓을 정리했다. 그리고 한 장의 두꺼운 종이를 꺼내, 짧게 썼다.


"충직한 자, 장막을 지키다."


그 한 문장이, 사라의 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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