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창세기_16
사라가 다시 상단 장부를 펼친 건 장례가 끝나고도 사흘이 지난 뒤였다. 모래처럼 흩어진 하인들의 동선을 다시 모으고, 말 먹이 계산을 다시 맞추고, 이삭에게 돌아올 화물 단가를 설명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바람이 잦았다. 노새들이 제자리에서 하품을 했고, 장막의 고리는 풀리지 않았다. 사라는 늘 그랬듯 검은 감색 두건을 단단히 동여매고 있었다.
“어머니, 오늘은 좀 쉬세요.”
이삭이 말했다.
사라는 장부를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엔 조심스러운 연민이 있었다.
“왜, 누가 뭐라고 하디?”
“아뇨. 그냥… 장례 후엔 원래 사람들이 좀… 그러잖아요.”
사라는 씩 웃었다.
“그런 건 연약한 여자들이나 하는 소리다. 너는 네 아비를 닮아, 괜한 정에 약하구나.”
그 말엔 날이 없었지만, 이삭은 잠자코 물러났다.
사라는 그 자리에 남아 천천히 장막 가장자리를 바라봤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모를 바람소리가 장막을 긁었다.
그녀는 무심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발밑의 모래는 여전히 뜨거웠고, 저만치 황혼 속의 사구는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
그곳, 장막 뒤편, 아브라함의 자리가 아직 치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허름한 담요 한 장, 꿰맨 자국 많은 물병, 그리고 닳아빠진 작은 돌판 하나.
사라는 무릎을 굽히고, 그 돌판을 쳐다봤다. 거기엔 숫자 몇 개와 이삭의 어린 시절 키를 새긴 자국이 있었다. ‘이삭이 네살, 내 발끝만 하더이다.’ 아브라함이 늘 웃으며 하던 말이었다. 사라는 갑자기, 그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다. 어디선가 그의 음성이, 바람을 타고 밀려드는 듯했다.
“사라, 나 한 장만 더 재 봐도 되오?”
사라는 그 돌을 손으로 짚었다. 감촉은 단단했지만, 그 순간, 눈꺼풀 뒤가 서서히 젖어들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당신이 말을 안 하니까 이 광야가 이렇게까지 조용했었구나.’
그녀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돌에 이마를 기댔다. 그리고 그 아래, 조심스럽게 한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것은 울음이 아니었다. 흐느낌도 아니었다. 그저, 마침내 허락된 한 방울의 고백이었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그걸 감정이라 이름 붙이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 사라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대는... 내 곁에 오래 있었구나.’ 그리고 그 하루는 조용히 저물었다. 무심한 하루처럼, 그러나 처음으로 조금 결이 달라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