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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장막

다시쓰는 창세기(19)

by 음감

물 한 잔조차 쉽지 않았다. 가슴 아래까지 불어난 배는 리브가의 숨을 자주 끊었다. 그래도 그는 늘 앉아 있었다. 상단의 결제 서류를 읽고, 외지 상인들의 도착 날짜를 재차 확인했다. 하인들은 눈치를 보며 서류를 바치고 물러났고, 리브가는 줄곧 고개를 끄덕이거나,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날도 그는 상단 장부에 붉은 인장을 눌렀다. 손등의 힘줄이 굵어져 있었고, 인장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삭이 장막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식은 수프 그릇이 들려 있었다.


“쉬고 있어야지.”

“이거 결제 안 하면, 저 상인은 다음 달에도 똑같은 품목을 다시 팔러 올 거예요. 우리는 이듬해 건초 거래부터 준비해야 하고요.”


“건초는 낙타가 먹는 거야. 넌 아니야.”


리브가는 그 말에 웃지 않았다. 이삭도 억지로 웃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굳은 살처럼 익숙하고 단단했다.


“아이 낳고도 일할 거야?”


이삭이 물었다. 그는 묻는 톤으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생각을 말한 것이었다. 리브가는 그의 목소리에서 뭘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를 많이 낳아 달라는 뜻이었다. 씨족은 늘 자손의 수로 세를 세었고, 리브가는 당연히 그 기대의 중심에 있었다.


리브가는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아이는 자주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느리게 뛰는 게 느껴졌다.


“당신은 일이 중요한 사람이야, 리브가.”

이삭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아이도 많이 낳았으면 해.”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거기엔 욕심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다.


리브가는 마주보지 않았다. 대신 창 너머 자스민 화분을 바라보았다. 그 작은 가지에도 바람은 들었다.


“둘 중 하나만 할 거예요.”

“둘 다 하는 건 무리인가?”


“일을 할 땐 내 안이 비어야 해요. 생각으로 가득 채워야 해요. 그런데 아이를 품고 있으면, 나는 내 안을 아이에게 내어줘야 하거든요.”


이삭은 말이 없었다. 그 말이 어떤 뜻인지,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 사라도 같은 말을 했었다. 무거운 자궁이 마음의 무게까지 데려가는 거라고.


“나는 당신이 내 어머니보다 더 강한 줄 알았는데.”

그 말에 리브가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강한 건 맞아요. 하지만 강한 것과 무리하는 건 달라요.”

이삭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첫째를 낳고 나면?”

“그땐 다시 생각해 볼게요.”


리브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협상의 고수였다. 일은 끝까지 남겨두는 사람이었다.




며칠 뒤, 진통은 새벽에 왔다. 모래먼지가 잦아든 밤이었고, 별이 차가울 만큼 밝았다. 리브가는 조용히 일어났다. 이삭은 그의 움직임에 바로 일어났고,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산파를 불렀다.


리브가는 마지막까지 장막 안 물건들을 정리하고, 하인들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아이를 낳는 와중에도 그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산파가 다급히 외쳤다.


“지금은 머리부터 나와요. 힘 주세요. 단 한 번만.”

리브가는 이불을 움켜쥐며,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 장막의 일은… 꼼꼼해야 해요.”

그 말과 함께, 진통이 무너졌다. 머리가, 어깨가, 온몸이 그를 찢고 나왔다.


산파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울음은 잠시 뒤 따라왔다.

그날 아침, 장막의 향이 또 바뀌었다. 자스민 아래, 포플러 뿌리를 태운 냄새가 희미하게 섞였다.




이삭은 아이를 안고 조용히 말했다.

“이름을 뭐라 지을까.”


리브가는 천천히 일어났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당신이 지어요. 이번 아이는.”


이삭은 아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엘리에셀.”


리브가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좋아요. 엘리에셀.”


그 순간, 장막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더는 단둘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이제, 세 사람의 장막이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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