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카아사나, 방향을 배우다
수카아사나에서 오른손 끝이 왼발 엄지에 닿는 날을 기다렸다.
누군가는 이미 발바닥까지 닿아 있었다. 부러움은 조급함이 되었고, 조급함은 호흡을 거칠게 만들었다. 나는 “언젠가 나도”라는 문장 속에 살았다. 미래 시제로만 존재하는 완성을 향해 지금의 몸을 밀어붙였다.
어느 날, 손가락이 발가락에 닿는 순간이 왔다. 드디어 성공이구나, 할 때 선생님의 핸즈온이 왔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손길이 내 척추를 따라 움직일 때 기울어진 가슴이 느껴졌다. 무너진 중심축이 선명했다. 성공이라 믿었던 그 순간은 사실 가장 크게 길을 잃은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말없이 내 가슴을 바로 세워주었다. 손은 자연스럽게 발가락에서 멀어졌다. 도달했다고 생각한 곳에서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은 더 편안했다. 호흡은 더 깊어졌다. 닿지 못했는데, 오히려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방향, 그날의 핸즈온이 알려준 새로운 키워드였다.
발끝에 닿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향하는 방향이 중요했다. 손이 뻗는 거리가 아니라, 척추가 만드는 선이 중요했다. 힘을 주어 잡는 것이 아니라, 몸을 열어 맞이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그동안 계속 ‘닿으려는 힘’만 키웠지, ‘열리려는 마음’은 닫아두고 있었다.
다시 매트 위에 앉았다. 이번에는 발가락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가슴을 하늘 쪽으로 열었다. 척추를 길게 세웠다. 어깨를 뒤로 풀었다. 손은 무릎 위에 가만히 놓았다. 발가락까지는 한참 멀어도 괜찮았다.
그제야 먼저 도달한 사람들의 진짜가 보였다. 그들은 발가락을 먼저 잡은 게 아니라, 가슴을 먼저 열었다. 도달은 결과가 아니라 부산물이었다. 열림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닿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이 열리면, 손이 어디에 있든 자세는 이미 완성성이었다. 나는 그동안 끝을 찾아 헤맸지만, 요가는 중심에 관한 것이었다.
요가 매트 밖의 삶도 그런 것 아닐까.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에 무언가에 닿으려고만 했을까 돌아봤다. 저 목표, 저 성취, 저 인정 등에 닿으려 했다. 닿기 위해 나를 기울이고, 중심을 잃고, 호흡을 거칠게 만들었다. 도달하면 완성될 거라고 믿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열려 있었는가였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었는가가 중요했다. 성취의 순간에 내 중심은 바로 서 있었는가가 중요했다.
수카아사나는 삶도 닿음이 아니라 열림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발가락 끝이 아니라 가슴의 방향이 진짜 목적지라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수카아사나에서 발가락을 잡지 못한다. 하지만 가슴은 열려 있다. 척추는 바르게 서 있다. 호흡은 깊고 고요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이 전부다.
수카아사나가 건넨 선물은 완성된 자세가 아니라, 열림이 곧 완성이라는 메시지였다. 매트 위에서도, 삶 속에서도, 열림을 놓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