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인구조사, 예수의 시험
인생의 3분의 1은 잠이다. 잠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냥 눕고, 눈을 감으면 온다. 자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못한다.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잠을 당연하게 여긴다. 매일 자면서도 감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면증에 시달려본 사람은 안다. 잠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잠을 못 자는 밤이 계속되면 삶 전체가 무너진다. 몸도 마음도 버틸 수 없다. 잠조차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잠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내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깨닫게 된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잠인데, 그건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다. 그냥 주어진 것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이 사실은 그렇다. 내가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주어진 것들의 연속이다.
다윗은 말년에 인구조사를 했다.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얼마나 큰지, 군대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숫자로 ‘내가 이만큼 잘 다스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죄였다. 그 모든 것이 자기가 이룬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벌을 받고 이 모든 것이 내가 한 게 아니라는 것을깨달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의 변화다. 다윗은 성전을 짓는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성전을 짓지 못하지만, 아들이 지을 수 있도록 돌과 나무와 금과 철을 모았다. 그 모습이 마치 청년 같았다. 노년의 다윗에게서 새로운 열정이 솟아났다.
‘내가 했다’는 생각에 갇혀 있을 때, 다윗은 인구를 세며 자기 업적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한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자,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일에 기쁘게 헌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통계와 숫자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났을 때, 진짜 자유가 찾아왔다.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 첫 번째 시험은 이것이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봐.” 예수가 그걸 못했을까? 아니다. 나중에 보면 물을 포도주로 바꾸기도 하고,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기도 한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지만 예수는 거절했다. 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 주겠다”는 제안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얻으면 일하기 쉬울 것 같다. 권력이 있으면 사람들을 더 쉽게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예수는 그것도 거절했다. 소유하지 않았기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기에 그 능력에 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진짜 강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세우지 않는다. 예수는 “내가 할 수 있는 평안”이 아니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말했다. 그 평안은 내가 많이 가졌을 때가 아니라, 내가 내려놓았을 때 온다.
우리가 “내가 이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은 무거워진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어떤 관계에서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한 것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가 온다. 감사가 생긴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정말로 기쁘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