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셀프 러너스 하이

달리기는 이 맛이지, 아무도 모르는 기분

by 카피자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달리다 보면 갑자기 찾아오는 황홀경, 도파민이 분출되며 세상이 환해진다고 하지요. 어떤 러너는 이 짜릿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이고, 또 다른 러너는 “그게 대체 뭔데?” 하며 고개를 갸웃합니다.


저도 러너스 하이라는 단어에 호기심을 느꼈지만, 늘 의문이었습니다.

“그게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막연한 동경을 품고 달려봤지만, 정작 똑 부러지게 “아, 지금이 바로 러너스 하이야!”라는 느낌도 잘 몰랐습니다. 달리기는 괴롭고, 하기 싫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렇게 달리기를 이어가던 어느 날, 신기한 순간을 맞았습니다.


달릴 때 힘들다는 생각만 반복되다가, 어? 어느 순간 몸이 가벼워지고 발이 기계처럼 앞으로 뻗어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좋다.. 이대로라면 계속 달릴 수도 있겠다”는 묘한 기분이 찾아왔습니다.


“아, 이게 러너스 하이일까?”




‘좋다’는 감정을 붙잡는 힘


그 경험을 곱씹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좋다’는 건 얼마나 주관적일까? 같은 장면도 어떤 사람은 '좋다'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데...


저는 삶에서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눈앞의 많은 것들에 감정을 붙였습니다.


길 가다 아이가 경쾌하게 발을 구를 때, “귀엽다. 좋다.”

벚꽃과 목련이 동시에 피어 나를 내려다볼 때, “아, 좋다.”

넝쿨 장미꽃이 길게 늘어선 길을 달리며, “예쁘다, 좋다.”

그 순간들마다 기분은 금세 환해졌고, 기쁨이 번져갔습니다.


달리기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마주 달려오던 사람이 살짝 길을 비켜주어 제 길이 환히 열렸을 때,

광안리 바다 위 불빛이 은빛 파도에 부서질 때,

호흡과 심장, 팔다리가 군악대처럼 척척 리듬을 맞춰 나아갈 때,

저는 그 순간마다 “아, 좋다”라는 감정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러너스 하이를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달리며 특정 순간 번쩍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막연한 느낌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붙잡는 것. 그게 바로 나만의 러너스 하이가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만든 이름, 셀프 러너스 하이


그때 저는 제 달리기 경험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셀프 러너스 하이(Self Runner’s High)’


길 위에서 작게나마 “좋다”라고 느낀 순간을 나만의 러너스 하이라고 선언하는 것. 그리고 “달리기는 이 맛이지, 계속 달려야지”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

저절로 찾아오는 어떤 극적인 황홀경을 기다리기보다, 달리며 내가 적극적으로 좋다는 감정을 찾고 붙잡아 느끼기로 한 거예요.


셀프 러너스 하이는 단순히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아, 지금 기분이 좋구나” 하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좋은 감정이 더 커지는 걸 경험했거든요. 그리고 그 기분은 다음 달리기를 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달리기를 하면서 ‘셀프 러너스 하이’를 만들어갑니다. 달리기가 괴로움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좋은 기분 만나러 달려가자


오늘도 달리고 돌아와 ‘셀프 러너스 하이’라는 글을 씁니다.

달리기와 글쓰기가 연결되면서 내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셀프 러너스 하이가 되었습니다.


셀프 러너스 하이, 러너스 하이가 어쩌다 느껴지는 ‘수동태’ 감정이 아니라, 내가 달리며 적극적으로 느끼는 ‘능동태’ 감정이라고 마음먹습니다.

살아있으니 달리고, 달리니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서 글 쓰며 또 살아있음을 느끼니까요. 이것이 내가 만들어가는 셀프 러너스 하이니까요



나만의 소소한 '셀프 러너스 하이'를 찾아 달려가 보는 건 어떠신가요?

미처 몰랐던 미지의 감정이 가슴속에 달려와 안길 테니까요



손흥민도 웃으면서 뛰네? (출처 : 대한축구협회)



https://brunch.co.kr/@folsy/106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달리기와 인쇄광고는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