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에서 도망쳐 달리다가 얻은 것들
힘든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 길거리로 뛰쳐나간 나. 달린 게 아니라 도망쳐버린 나. 하지만 돌아올 곳은 집이었죠.
결국 도망친 게 아니라 달린 게 되어버렸습니다.
분명 달리기는 힘들었어요. 그런데 나는 왜 계속 도망, 아니 달리기를 하고 있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극도로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왜? 왜?
달리기 전에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멍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지요. 오늘 괴로운 일을 떠올리면서요. 내일 회사에서 벌어질 불편한 상황들에 진저리 치면서요.
현실 속 부족한 나를 보며 속상해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걱정은 많지만 그냥 재밌는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밤새 뒤척이며 겨우 잠들었지요.
하지만 달리기를 하고 난 뒤 개운하게 샤워를 하면,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꿀잠 예약이에요.
지금은 길거리에서 헉헉거리며 뛰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타고난 애주가, 술을 먹어도 멀쩡한 주당, 초나라 주신, 별별 술 별명을 달고 다니던 제가 어느 날 술을 끊어버렸습니다. 달리기 하며 고생한 게 아깝다는 생각을 하니, 술도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안하면 머리카락을 뽑는 강박 습관도 있었는데요. 달리기를 하니까 더 이상 머리카락을 뽑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십 년 넘게 머리카락을 뽑던 습관이 쏙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일 신기한 효과였어요
달리기는 힘이 들지요. 하지만 이상하게 몸은 힘든데 마음은 덜 힘들었어요.
뇌과학에 따르면 달리기를 한 뒤에는 힘든 상황이 와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해요.
달리기 할 때 힘드니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많이 나와요. 달리기를 한 뒤 48시간 동안은 힘든 상황이 와도 코르티솔이 덜 나온다고 하네요. 달린 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느끼는 거지요.
실컷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 샤워를 할 때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내일 회사에 가면 이렇게 대처해 봐야겠다’ 마음먹기도 합니다.
달릴 땐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집니다. 뇌가 신체의 극한 상황을 이겨내려고 바빠진다고 합니다. 생존 본능인 거죠.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에 균형을 잡습니다. 호흡을 고르고, 발을 내딛는 것에만 집중하지요. 그러다 보면 불안한 과거나 미래 따위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저 달리기 하는 현재에만 머물 수 있습니다.
달리기는 정직했습니다. 달리면 달릴수록 거리가 늘어나고 숨이 덜 찼습니다.
기록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기록을 보는 재미에 또 달리게 되었죠.
점점 발전하는 나를 보는 건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애써보는 나. 그저 달리기만 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약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달리기 목표를 달성하면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라는 근자감이 듭니다.
그 용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현실의 문제들이 닥쳐도 '해 보지 뭐.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라는 마음을 먹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달리다 보면, 다부진 자세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죠. 흘끔 표정을 봅니다. 땀 흐르는 얼굴에 입을 꾹 다물고 뛰는 그 사람들.
그들을 보면 묘한 위로를 받습니다. ‘저 사람도 지금 죽을 듯이 힘들 거야. 그런데 그냥 묵묵히 가고 있잖아. 나도 내 길 가’ 라고요.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그럼 이상한 동지애도 느낍니다. 처음 달리기를 하려는 그 마음을 힘껏 응원해 줍니다.
달리고 글 쓰면서 저는 진짜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혹시 달릴까 말까 생각한다면,
지금 마음속 불안으로부터 도망쳐 보는 것은 어떤가요?
속는 셈 치고 도망쳐보세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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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