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3일 까만 아기고양이 한 마리를 집으로 들였다. 동네 산책을 하는데 사람 소리에 놀랐는지 새까만 것이 후다닥 자동차 바퀴뒤로 몸을 숨겼다. 그즈음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 길냥이들을 보살피기 시작했고, 그런 아이들을 쫓아 츄르를 사다 나르면서 나도 길냥이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던 때였다. 산책길에 마주치는 길냥이는 너무 흔해서 보통은 냐옹냐옹 인사만 나누고 지나가는데, 그러기엔 아이가 너무 작았다. 쭈그려 앉아 냐옹 하고 부르니 손바닥 만한 것이 고개를 슬쩍 빼고 살피더니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손바닥 만한 몸은 빼싹 말랐고, 한쪽 눈은 어디서 다쳤는지 피딱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일단 얼른 편의점에 가서 츄르 하나를 사다 먹였는데, 이 녀석이 자꾸만 내 뒤를 쫓았다. 숑숑 작은 몸을 이리저리 숨기면서 산책길에 동행했다. 걸으면서 ‘안돼 쳐다보지 말자’, ‘제대로 못 키울 것 같으면 안 데려가는 게 맞아’, ‘아이 넷 만으로도 충분해.’ 같은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분명 그랬는데 현관문을 열 땐 작은 상자 안에든 아이고양이와 함께였다. 길냥이를 돌봐주는 건 좋지만 집으로 들이는 것은 절대 안 된다던 사람이 나였는데, 닫힌 현관문 안은 이미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아이들의 놀란 눈, 남편의 걱정스러운 눈빛, 내가 데려와 놓고는 어쩔 줄 모르던 나와, 현관 바닥에 졸졸 오줌을 누던 작은 고양이와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얼결에.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바로 동물병원으로 갔다. 눈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안구가 터져서 흘러나왔고, 치료를 마쳐도 기능은 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230g 밖에 안 되는 작은 몸으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처치와 접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펫샵에 들렀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 작은 아이를 수건에 싸서 함께 들어갔다. 길냥이였던 아이를 데려왔고, 집에서 키우려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사고 싶다고. 고양이 상태를 본 사장님은 얼마 못 살 거라고 했다. 그러니 일단 사료만 사고 나중에 다시 오라고.
그랬던 아이가 지금 내 옆에 있다. 골골골 몸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동그랗고 보드라운 머리통을 자꾸만 내 팔에 다리에 갖다 문댄다. 츄르 줄까? 하면 기똥차게 알아듣고 츄르가 있는 싱크대 문 앞으로 달려가 앉는다. 사료도 잘 먹고, 목욕도 잘하고, 잠도 잘 자고, 점프도 잘해서 어디든 척척 올라간다. 가끔 물그릇을 엎거나, 작은 화분 따위를 픽 넘어 뜨리는 것 빼곤 사고도 치지 않는다. 아, 새 잡는다고 방충망을 타고 올라가서 베란다 방충망이 조금 찢어지긴 했다. 그래도 사고 치는 다른 냥이들에 비하면 양반이다.
사랑스럽고 건강하고 온순한 우리 냥이의 이름은 ‘까뮈’다. 새까매서 깜이(혹은 까미)라고 할까 하다 너무 흔한 이름보단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알베르 까뮈에서 이름을 따왔다. 비록 첫 발을 내딘 세상은 험하고 힘들었지만, 까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냥이가 되라고.
롱다리 까뮈
요가하는 까뮈
곧 있으면 까뮈가 우리 집에 온 지 꼭 일 년이 된다. 아이들과 함께 우스개 소리로 1년이 되면 까뮈 돌잔치를 하자고 했는데 진짜 그런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나는,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길냥이를 돌보기 전까지 나는, 길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를 보면 기겁했던 사람이었다. 한 번도 가까이해본 적이 없어서 무서웠고, 어쩐지 확 달려들 것만 같아서 고양이가 도망가기 전에 내가 먼저 도망갔었다. 그런 내가 집사가 됐다. 통실통실한 고양이의 뱃살을 만지고, 동그랗고 작은 똥꼬가 귀여워 고양이의 궁둥이를 온종일 팡팡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