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겨울이 찾아오면, 또 다른 시작
페퍼톤스의 연말 공연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이다. 거의 매년 진행되어 온 페퍼톤스의 연말 공연은, 흐트러지고 꺾이기 쉬운 12월에 복잡해진 마음을 정리하며 “우리도 올해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해내며 잘 살아왔으니, 여러분도 잘 살아서 다시 만나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2024년 공연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이루어온 것들을 자랑스럽게 알리며, 오기념하는 ‘Twenty’라는 이름으로 마무하는 공연이었다.
“보람과 기쁨은 또 찾아온다. 나는 아직도 분하고 또 기쁘다”
올해 20주년 기념 앨범의 대표곡인 ‘코치’의 메시지는, 계속 진행형인 20년 차 밴드 페퍼톤스를 잘 보여준다. ‘라이더스’에서 이야기하듯, 남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도 페퍼톤스다운 모습이었다. 나의 롤모델과 같다고 말해왔던,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생각을 해보게도 됐다.
Rewind부터 Riders까지
이번 공연은 최신 앨범부터 1집까지의 곡을 메들리 형식으로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구성 덕분에, 페퍼톤스의 좋은 곡들을 메들리 형태의 라이브로 꽉 채워서 들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첫 곡인 ‘Rewind’에서는 마치 엔딩 크레딧처럼 페퍼톤스가 노래하는 화면 위로 크레딧이 올라가는 연출과 함께 곡이 시작되었는데, 이 순간부터 이미 눈물이 날 것 같이 벅찬 마음이 들었다. 오랜 시간 페퍼톤스의 팬으로서, 10주년 공연 때만큼이나 깊은 감동과 벅찬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끝내지 못한 편지 속의 이야기 더 이상 빛나지 않는 별들의 밤
오래전에 사라진 어느 밴드의 데모 테잎 아무도 오지 않는 집 - rewind
많은 고민이 담긴 공연으로 다양한 셋리스트, 그때에 맞는 변주를 주는 페퍼톤스의 공연은 언제나 새롭다. 이번에는 평소 보기 어려운 오케스트라가 함께해서 더욱 좋았다. 스트링이 밴드 음악에 들어갔을 때에 주는 찡한 기분은 공연의 벅참을 더 크게 만든다.
올해 20주년을 맞아 이런저런 콘텐츠를 열심히 만들고 시도하는 페퍼톤스의 모습을 지켜보고 같이 그 콘텐츠를 즐겼다. 올 한해 열심히 “홍보”를 한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내가 만든 작품을 사람들에게 더욱 다양하게 보여주고 알리는 것 또한 내 작품을 사랑하고 아끼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팬으로써 그들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여러 채널과 방식으로 접할 수 있어 매우 즐거운 2024년이었다.
<페퍼톤스 콘서트 twenty 셋리스트>
1. Rewind (2024 - 20주년 앨범 Twenty Plenty)
2. 코치 (2024 - 20주년 앨범 Twenty Plenty)
3. Shine (2022 - Cheer upOST)
4. 태풍의 눈 (2022 - 7집 thousand years)
5. 사파리의 밤 (2022 - 7집 thousand years)
6. 긴 여행의 끝 (2018 - 6집 LONG WAY)
7. 카우보이의 바다 (2018 - 6집 LONG WAY)
8. 굿모닝 샌드위치 맨 (2014 - 5집 HIGH-FIVE)
9. 몰라요 (2014 - 5집 HIGH-FIVE)
10. 청춘 (2014 - 5집 HIGH-FIVE)
11. FAST (2014 - 5집 HIGH-FIVE)
항상 포함되는 셋리스트 중 하나로, 늘 기다려지는 곡. 라이브에서만 들을 수 있는 후반부의 시끌벅적하고 노이즈같은 느낌도 들면서도 그와중에 조화로움이 느껴지는 연주는 정신없이 달려가는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표현해낸 듯하다. 라이브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속의 시끌벅적함이 음악에 실려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12. 검은 우주 (2012 - EP open run)
13. BIKINI (2012 - 4집 beginner's luck)
14. 21세기의 어떤 날 (2012 - 4집 beginner's luck)
15. 작별을 고하며 (2009 - 3집 Sounds good!)
라이브로 듣기 어려운 곡이라 이렇게 특별한 날만 들을 수 있다. 3집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기교 없이 신재평님의 목소리만으로 소중한 사람들, 시간과의 작별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곡이다.
16. Balance! (2008 - 2집 New Standard)
17. 해안도로 (2008 - 2집 New Standard, 게스트 현민)
18. 공원여행 (2009 - 3집 Sounds good! 게스트 현민)
기분이 확 좋아지는 활기찬 에너지를 가진 현민님이 게스트로 나와 함께해 주셨다. 그들이 20대 청춘에 곡을 만들며 느꼈을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해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날씨 좋은날 더 기분 좋아지고 싶을 때 듣는 곡들을 현민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흔치않는 기회라 더 좋았다.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마치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는 장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20대의 음악을 함께했던 현민님과의 공연에서 나도 그때로 돌아간 듯한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라는 존재는 바로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구나 싶었다.
19. Galaxy Tourist (2008 - 2집 New Standard, 게스트 스텔라장)
20. Superfantastic (2005 - 1집 Colorful Express, 게스트 스텔라장)
게스트 스텔라장! 페퍼톤스 공연에 스텔라장이 나오길 항상 기다리는데 20주년 기념 티셔츠를 귀엽게 입고 와서 '갤럭시 투어리스트'를 불렀다. 스텔라장이 페퍼톤스의 팬이었다고 들었는데, 정말 내가 꿈꾸는 '성공한 덕후'의 모습이다. 아 부럽다 나는 저렇게 되려면 뭘 해야하지?
21. Everything Is OK (2005 - 1집 Colorful Express)
22. 21st Century Magic (2004 - EP A PREVIEW)
23. Ready, Get Set, Go! (2005 - 1집 Colorful Express)
이 곡에서 ready and get set go! indigo skies up high!내 전부를 터뜨리는 이 순간 이라는 가사를 무지 무지 좋아한다. 페퍼톤스의 음역대로 들을 수 있었던 곡.
24. New Hippie Generation (2008 - 2집 New Standard)
25. 겨울의 사업가 (2009 - 3집 Sounds Good!)
26. 행운을 빌어요 (2012 - 4집 beginner's luck)
정말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와 라이브의 완벽한 조화로 만들어진 후주 부분. 10년 전 이 연주를 듣고 눈물이 울컥했었는데, 여전히 그 감동은 변함없다. 오늘도 잔뜩 응원받는 느낌을 받고 간다.
27. Thank You (2013 - 싱글 Thank You)
28. long way (2018 - 6집 LONG WAY)
29. GIVE UP (2022 - 7집 thousand years)
30. 라이더스 (2024 - 20주넌 Twenty Plenty)
앵콜. 계절의 끝에서
“여러분이 삶에서 성취도 잘 이루고, 성공하며 나아가는 것이 페퍼톤스가 꾸준히 존속할 수 있는 길입니다. 힘들었던 것들 훌훌 털어버리고 잘 지내다가 여기서 또 다시 만나요”
포기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2024년이었다. 실제로 포기하려고 시도도 해보고, 멍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날들도 많았다. 여전히 쉬는 것에 대한 죄책감, 모든 것을 내가 다 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내 앞에 쌓인 모든 것들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욕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포기를 시도 하는 과정에서 느릿하게 한 발짝 나아가게 된 것 같다. 매우 느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내 방법을 찾아가면서 잘 지내다가, 또 힘들 때 쯤이면 다시 만나서 되감기를 하고, 다시 또 잘 지내고 그렇게 잘 지내는 날의 시간을 늘려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