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정직하게 나아지는 것
20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가장 좋았던 점은 더 이상 내 삶에 체육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운동을 정말 못하는 아이였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고, 내가 던지는 공은 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단체 운동을 할 때면 실력 차이가 뚜렷해 창피한 순간도 많았다. 특히 순발력이 부족한 나는 선생님의 눈에 자주 걸렸고, 면박을 듣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체육 시간은 내게 ‘못하는 걸 들키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더 이상 갖지 않아도 된다니, 성인이 된 후 가장 기억에 남도록 좋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운동을 마치고 문득 신기했던 점이 있다. 나는 1년 넘게 주 2회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체력이 바닥을 치고, 영원히 찌지 않을 것 같던 살도 점점 찌기 시작하며 작년에 최고점을 찍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운동이었다. 사실 그전에도 몇 번 시도했지만 꾸준히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러다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드니 진짜 간절함이 생겼다.
그렇게 살면서 스스로 운동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1년이 넘도록 운동을 하고 있다. 조금 더 힘을 쓸 줄 알게 되었고, 매일 넘어지던 내가 10km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숨이 차고 다리는 아프지만, 마라톤을 통해 내 속도로 멈추지 않고 가는 법을 배웠다. 과하게 불타올랐다가 쉽게 포기하는 나의 성향을 돌아보며, 삶에서도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자주 하게 됐다.
조금씩 힘을 쓰는 원리를 익혀가면서 내 몸의 변화를 느껴가는 재미도 느꼈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삶 속에서, 느려도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나아지는 활동이존재한다는 것 또한 매우 긍정적 영향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체육 시간이 ‘남들보다 못해서 창피한 시간’이 아니라, ‘느려도 꾸준히 해나가고 끝까지 가보는 경험’을 쌓는 시간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운동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이 두렵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돕는 사람이 되어야지
여전히 하기 싫은 날도 많고, 실력 향상의 속도도 느리게 가고 있지만, 분명한건 나는 더 나아지고 있다는거다. 앞으로 운동을 꾸준히 해서 체력이 넘치는 날이 오길 바라며 내일도 운동을 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