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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유쾌한 마음 뒤에 동일한 면적의 그늘이 지는 사실이 난 싫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는 음률에 염원을 담아 버렸는지 소싯적 말 못 할 열망은 유튜브의 탄생으로 새롭게 불씨가 붙어버렸고, 세상에 절대 공개할 수 없는 첫 영상은 2018년 7월 14일이 찍혀있다. 콘텐츠를 위해 인사를 연습하는 1분 39초 영상인데, 설명에 "관종이지만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이라고 (열받게) 써놨다. 세상에 얼굴을 공개할 용기가 추호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 손으로 촬영하고 다른 한 손으로 요리하는 엉성한 영상 12개를 덤으로 숨겨놓았다. 딱 한 영상만 공개로 해놓았는데, 그건 바로 2020년도에 찍은 마라 떡볶이 레시피이다. 마라 떡볶이가 프랜차이즈화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시도했다는 것을 증거로 남기고 싶은, 누구도 관심 없는 프라이드의 일종이 맞다. 그 후에도 토론토 일상을 담은 짤막한 브이로그 몇 개를 뒤로하고 갈피를 못 잡은 채 다시 시청자를 자처했다.
왜 그렇게 미디어에 남기를 바랐을까, 그냥 관종인 게 다였을까?
관심을 탐하는 욕망 한 줌,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 한 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상 한 줌, 이상과 현실의 괴리 한 줌, 본연을 억누르던 아픔을 고발하고 싶던 마음 한 줌. 그렇게 몰래 채워 넣은 바람들이 범람하여 영상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시도마저 주위의 시선과 반응이 무척 신경 쓰인 것도 사실이다. 연고가 없는 한국에 와서야 어떤 해방감을 느끼며 얼굴이 안 나오는 쇼츠 100개, 얼굴이 반만 나오는 쇼츠 96개를 만들면서 멀찍이 우회하며 천천히 본심으로 다가갔다.
나는 용기에 비해 너무 큰 액션을 취하는 사람이다. 이 옹졸함이 싫다. 그냥 어떤 비장함도 없이 담백한 실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하게 큰 마음은 종종 갑절의 실망으로 아프게 돌아오곤 한다. 그럼에도 요만한 불씨에 오버스럽게 바람을 일으키는 이유는 용기와 액션의 간극을 줄이고 덜 옹졸해지기 위해서는 일단 하는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행함으로 무뎌지는 법밖에는 방법을 모른다.
3주 전에 얼굴을 전부 공개하고 수다를 떠는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총 11개의 영상은 친절한 플랫폼에 의해 명확하게 숫자로 수치화됐다. 3주 동안 6명의 인스타 팔로워가 떠났고 4명이 새로 왔다. 유튜브 채널에서 202명에서 203명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순식간에 다시 202명이 됐고 지금은 204명이 되었다. 새로 온 사람들을 행복하게 맞이하기보다 얼굴도 모르는 떠난 이들의 빈자리를 더 쓸쓸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유라도 알고 싶은데, 알게 되면 달라질게 뭐가 있을까?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쓱 발 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거로 돈벌이할 거야?'라고 묻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들리는 것 같아서 머쓱하게 '취미론 좀 오버지?'라고 미리 선수치고 싶은 이따위 그늘이 자꾸 커지려 한다. '너무너무 하고 싶었어'라는 본심을 말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보다.
아직 어스름 한 여명이다. 지평선 끝까지 그늘이 늘어지는 시간. 넋 놓고 쉴 수 없다. 내가 태양이기에 스스로 떠오르지 않으면 그늘은 한 뼘도 저물지 않는다. 부지런히, 그림자가 길을 잃는 정오까지는 옹졸하게 떠올라야지.